인간은 과연 서로에 대해 이해해줄 수 있을까?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서로에 대한 이해만으로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으리라 믿어도 되는 것일까? 냉정한 질문이었다. 마키아벨리의 저술이 중세 기독교 질서의 공공연한 허위를 폭로했다면, 케네스 월츠의 질문은 근대 자유…
더보기 »시간을 돌이켜 1999년으로 잠시 돌아가보자. 당시 사람들은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20세기의 험난한 경험 탓에 호들갑스런 낙관에 빠져들 수는 없었더라도 여전히 21세기는 기대할만한 것이었다. 물론 하룻밤 사이에 세상살이가 갑자기 나아질리도 없었고, 또…
더보기 »지식은 해석이다. 해석이 없는 자료는 아무리 많더라도 단순한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지식은 자료로부터 잉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반대이다. 해석이 먼저이고, 근거로써 자료가 요청된다. 물론 새로운 사실의 발견 등으로 인해 기존의 지식에서 결함을 찾아내게 …
더보기 »1945년. 전쟁이 끝났다. 세계대전이라는 명칭 그대로,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지구의 어디에도 없었다. 직접적인 전장이 되어 일상적인 생필품을 구하는 데에 생명을 걸어야 했던 지역만 해도, 영국에서부터 유럽대륙과 북아프리카를 지나 인도차이나와 동아시아 전역에 이르렀…
더보기 »"자본론"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두려워진다. 바야흐로 어디에서나 '신자유주의'의 유령이 떠도는 시대가 아니던가. 비록 유명세는 한참 떨어지지만 어쨌든, 마르크스와는 또 다른 의미로 하이에크 역시 극렬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굇수 중의 하나…
더보기 »만약 그가 오늘의 세계를 바라본다면, 그렇더라면 어떠한 생각을 했을지가 궁금해진다. "어제의 세계"는 자서전이면서도 유서이다. 노쇠한 시대를 보냈던 젊은 시절에 대한 향수이고, 또 낯설은 현재에 대한, 약간쯤의 변명이기도 하다.
더보기 »아주 익숙한, 하지만 이내 낯설어질. '그들의 일상은 역사가 된다'는 카피처럼, 헤이르트 마크는 역사를 사건들의 연속으로 이어붙이지 않는다. 20세기의 끝자락, 1999년의 유럽에서 사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파리에서, 런던에서, 베…
더보기 »http://www.ddanzi.com/2829929 딴지 편집부의 화려한 편집술과 함께 하려면 위의 링크를 클릭, 내용은 (거의) 차이가 없다. 가끔씩 현재의 세계가 100년 전의 그 모습과 꼭 빼닮아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콕 집어 말하기엔 어렵지만 왠지 …
더보기 »너는 누구 편인가. 이는 아마도 20세기 초중반을 결정지었던, 가장 중요하고도 섬뜩한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회색지대도, 대안도 존재할 수 없었다. 친구가 아니면 적이었고, '하지만'이라는 단어는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습게도 생존 혹…
더보기 »과연 나는 나 자신이 겪은 경험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현재의 시간, 2014년. 하지만 현재는 현재로써만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현 시대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경험은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 과거는, 좋든 싫든, 엄연한 현실이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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