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 편인가. 이는 아마도 20세기 초중반을 결정지었던, 가장 중요하고도 섬뜩한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회색지대도, 대안도 존재할 수 없었다. 친구가 아니면 적이었고, '하지만'이라는 단어는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습게도 생존 혹은 이해관계로 인해 스스로를 기만하는 타협이 횡행했던 전쟁. 스페인 내전은 이념에 모든 것을 걸었고 또한 이념의 불길한 종막을 예고하는 전쟁이기도 했다.

군대·왕정·교회의 삼위일체는 과거에는 제국을 만들어낸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제국을 무너뜨리는 주역으로 전락했다.
- 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 "스페인 내전", '제1장 스페인의 국왕들', p. 37

제1차세계대전의 여파는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에도 밀어닥쳤다. 전쟁이 가져다준 호황은 오로지 기업가들의 이익으로 집중되다 전쟁과 함께 끝나버렸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물가와 모로코 원정 실패, 점증하는 예산 적자는 결국 왕정을 붕괴시키고, 1933년 선거에 의한 공화국 정부를 탄생시키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에게 주어진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등으로 뒤섞여 있던 좌파는 좌파대로 개혁의 수위를 높이고자 했던 반면, 전통적인 지주와 성직자, 군인, 파시스트 등으로 구성되었던 우파는 우파대로 어떠한 변화도 거부했다.

(이렇게)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연합체를 구성하도록 자극하는 분위기는 중간 지대를 공동화하고 사람들을 좌우로 양극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 '제4장 인민전선', p.81

정치적 신념의 양극화는 전쟁의 양 당사자 모두에게 자신들이 믿고 있는 모든 것이, 혹은 자신들의 존재 자체까지도 모두 전쟁 경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 '제38장 무너진 대의명분', p.737

1936년의 군사반란은 협상의 종말이었다. 각자의 대의로 무기를 들었고 전세계 곳곳에서 자원병들이 몰려들었다. 반란을 일으킨 국민진영이건, 수세에 처한 공화진영이건, 자신의 정당성을 세계에 알리고 도움을 얻기 위해 펜과 포스터로 또 다른 치열한 전쟁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어느 쪽에도 진정한 우군은 없었다.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확대시키고자 했던 독일과 이탈리아,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또 다른 세계대전만큼은 피하려 했던 영국과 프랑스, 유럽의 정세에 깊이 관여되기를 원치 않았던 미국, 그리고 홀로 외따로의 고립을 두려워했던 소련, 스페인 내전에서 이념은 각자의 이해관계와 긴밀히 맞물리며 본래의 순수함을 잃어버린다. 어떠한 도움도 그것이 옳기 때문에 주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심지어 금(Gold)으로도 마지못한 제스쳐 정도만 얻을 따름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특파원들은 소속 신문사의 정치적 입장을 반영하거나 혹은 거기에 적응했다. 그 결과 1846년에 영국 작가 리처드 포드가 한 다음과 같은 언급은 90년 후에도 여전히 유효했다. "고국의 독자들은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해 자신들이 이미 지니고 있는 생각과 일치하는, 스페인 본토에서 날아오는 '진짜배기' 기사를 정독하고는 즐거워한다." … 라틴계 민족들은 '피 속에 폭력'이 담겨 있다든지 그들에게는 군사 독재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신문 머릿기사 제목에 반영되었다. 항상 그렇듯이 지면의 제약과, 독자들이 소화하기 쉽게 기사를 작성하려는 언론인들의 단순화 경향이 문제를 왜곡하는 경우가 많았다.
- '제21장 지식인들의 전쟁', p.435

그리고 전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각자의 대의에 상처를 남겼다. 앤터니 비버는 스페인 내전을 단순히 양극단의 물리적 충돌로만 한정짓지 않는다. 전황이 불리해짐에 따라 공화진영은 권위주의적인 공산주의자들에게 점점 더 많은 양보를 해야 했으며, 전황이 유리해짐에 따라 국민진영은 프랑코의 독단에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려워졌다. 모든 것을 가지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는 것, 스페인 내전은 둘로 갈린 스페인 뿐만 아니라, 그 내부에서도 '총력전'의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저마다의 상황들과 입장들, 그리고 비타협과 또 다른 타협들. "스페인 내전"은 간단하지 않다. 앤터니 비버는 간단한 한 마디로 쉽사리 정리하거나 결론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스페인 내전은 간단하지 않은 것들을 간단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데에서 출발된 불행은 아니었을까. '폭력은 공포의 왜곡된 표현(p.729)'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두고두고 곱씹어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