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과연 서로에 대해 이해해줄 수 있을까?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서로에 대한 이해만으로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으리라 믿어도 되는 것일까? 냉정한 질문이었다. 마키아벨리의 저술이 중세 기독교 질서의 공공연한 허위를 폭로했다면, 케네스 월츠의 질문은 근대 자유주의가 품었던 마지막 낙관마저 끊어내는 것이었다. 국가들간의 열전에 이어 냉전이 자리잡아 가던 20세기 중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따라서 상호협력이야말로 신뢰와 평화를 보장하리라는 믿음은, 고상하지만 그저 고상하게만 들릴 따름이었다.

"모든 일에서 선을 행함을 업으로 삼으려는 이는 너무나 많은 선하지 않은 이들 가운데에서 반드시 비탄에 잠기게 된다"
- 케네스 월츠 지음, 정성훈 옮김, "인간 국가 전쟁", '제7장 세 번째 이미지를 통한 분석의 함의 - 경제학, 정치학, 그리고 역사학에서의 실례', 아카넷, p.292 / 마키아벨리, "군주론", ch. xv

정치는 현실이다. 이성과 욕망이 동시에 작동하며, 통념에 의해 지배되면서도 통념을 형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 세간의 관심을 끌려는 노력은 의심스러울 때가 많고, 도덕적 논쟁은 소신보다는 이해다툼의 속물적 감정에 좌우되기 십상이다. 매우 자주 권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 순전한 자기현시로만 끝나기도 한다. 정치는 현실이다. 그 말은 곧 시궁창과 같다는 뜻이다. 보지 않을수록 마음이 편하지만, 복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한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정치는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에서만 목격되는 특정 문제점들은 어떤 면에서 보면 인간 본성의 사악함이나 인간의 탐욕으로 초래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정치 체제 내에서 집단적 인간의 탐욕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 '제2장 첫 번째 이미지 - 국제분쟁과 인간 행태', p.60 / Niebuhr and Eddy, Doom and Dawn, p.8

인류사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 케네스 월츠의 대답은 간단하다. 복수의 인간들이 복수의 집단을 이루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케네스 월츠는 이를 인간 본성의 문제, 국내 정치의 문제, 그리고 국가 간 관계의 문제로 분류해서 설명한다. 즉 모든 인간이 평화의 유지를 위해 무조건적인 자기통제를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망상이기 때문에, 불평등을 줄이는 데에 국가권력이 무관심하거나 혹은 대내질서를 유지하기에 필요한 강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리고 효과적으로 국가들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동 운명체라는 생각은 반드시 정당한 역할분담을 낳는 것이 아니며,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어쨌든 운명은 구성원들의 성격뿐 아니라 집단의 규모와 그 내부의 불균등 정도에 달려있는 것이다(Olson, 1965, pp.36, 45).
- 케네스 월츠 지음, 박건영 옮김, "국제정치이론", '08 구조적 원인과 군사적 결과', 사회평론, p.254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말처럼 '안정이 항상 모든 사람들의 최고선은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짜증스러운" 것'일 수 있었다("근대세계체제 I", p.427).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며 다른 처지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갈등의 원천이 된다. 더군다나 국가는 사회 내부와 외부에 쉽게 넘어서기 어려운 경계선들을 그어댄다. 집단의 구분은 필연적으로 집단의 이해관계를 낳는다. 그리고 이는 누가 '우리'에 속하는지를 묻게 만든다. 인간이 악해서라든지, 국가체제가 불완전해서와 같은 단선적인 이유로만 전쟁을 설명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특수성들 사이에서의 사고 발생은 우연이 아닌 필연("인간 국가 전쟁", p.251)'인 것이다.

쿤이 언급하고 있듯이, 만일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 두 사람이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말조차 할 수 없고, 동일한 데이터를 가진다고도 볼 수 없으며, 단지 그것을 다르게 해석할 것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1970, pp.266~76).
- "국제정치이론", '01 법칙과 이론', p.26

하지만 전쟁을 일종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있을 수 있으며, 만약의 사태에 언제나 대비해야 한다는 것 뿐이다. 또한 이러한 인식 하에서만 국내외의 불평등이나 안전에 대한 불안 등 전쟁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문제들에 대해 주의를 늦추지 않고 실질적으로 대처해나갈 수 있다. 평화는 평화에 대한 애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는 인위적인 질서이기에, 사회의 조화는 얼마나 설득력있는 질서를 만들어나가느냐에 달려있다.

"평화란 사악한 자들이 악을 저지르기 위한 구실로 이용될 수가 있다"
- '제8장 결론', p.323 / John Foster Dulles, "Experts from Dulles Address on Peace" (Washington, April 11, 1955), New York Times, p.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