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익숙한, 하지만 이내 낯설어질. '그들의 일상은 역사가 된다'는 카피처럼, 헤이르트 마크는 역사를 사건들의 연속으로 이어붙이지 않는다. 20세기의 끝자락, 1999년의 유럽에서 사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파리에서, 런던에서, 베를린에서, 이스탄불과 모스크바, 베오그라드에서, 그 다양한 유럽의 곳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20세기는 어떠한 시간이었을까를 차근차근 밟아나간다.

신세기는 여자였다. 1900년으로 돌아가면 모두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신세기의 새벽Dawn of the Century이라는 영국 노래의 피아노 악보 표지를 예로 들어보자. E. M. 폴이란 사람이 그린 '행진곡과 투스텝'이란 제목의 그림이다. 황금빛 구름 사이로 한 여자가 날개 달린 바퀴 위에서 균형을 잡고 서 있다. 주변에는 전차, 타이프라이터, 전화, 재봉틀, 카메라, 수확기, 기관차가 떠 있고, 아래에는 모퉁이를 돌아가는 자동차가 그려져 있다. (…)
프랑스 대통령 에밀 루베는 공식 개막사에서 신세기의 미덕으로 정의와 인간애를 역설했고, 고용부 장관은 신세기에는 관용과 연대의식으로 훨씬 더 좋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예상했다.
- 헤이르트 마크 지음, 강주헌 옮김, "유럽사 산책 1", '1부 균열의 시작, 드레퓌스 사건, 02. 파리, 신세기의 새벽', 옥당, p.34-35

물론 현재에는 알려져 있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으나 피할 수는 없었던 제1차세계대전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짧게 마무리되었던 전간기의 시간도, 사악한 나치를 패배시키고 공산주의의 음모를 분쇄한 후에도 더 좋은 세상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더라는 것, 정도는 말이다.

2000년을 앞두었을 때의 불안감을 기억한다. 또 다른 신세기는 환영받지 못했다. 마치 '세기말'이라는 단어는 20세기 동안의 모든 비극들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시계바늘이 넘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신세기는 인간이 제멋대로 나누어놓았을 뿐인 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녁 식사를 끝냈을 때쯤, 세르비아 뉴스가 시작됐다. 때로는 90분간이나 계속된다는 뉴스 프로그램이었다. 일기예보 방송처럼 전자 지도를 이용해 전선의 이동 상황을 보여주었다. 분석 보도에서는 피와 땅, 중세 시대 세르비아의 기사들이란 말이 계속 언급됐고,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가 자행한 잔혹행위 장면이 섬뜩할 정도로 자세하게 화면에 비추어졌다. 그러나 세르비아가 저지른 잔혹행위에 대래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흔히 그렇지만 프로파간다는 거짓말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다. 진실의 일부를 보여줄 때 프로파간다는 더 큰 설득력을 얻는다. 사리타는 "자그레브 라디오 방송 또한 똑같은 얘기를 하지만 역할이 정반대예요"라고 말했다. 사리타는 나를 위해 텔레비전 뉴스를 동시 통역해주었다. 아버지의 해석도 빠뜨리지 않고 통역해주었다. 그러나 곧 그녀는 직업윤리를 잃고, 통역하는 사이사이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말하죠", "우리 아버지 세대의 생각이 그래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라는 논평을 덧붙였다. 결국 통역 노릇은 중단됐고, 아버지와 딸은 고성을 지르며 극렬한 논쟁을 벌였다.
- "유럽사 산책 2", '12부 코소보 사태, 20세기에 마침표를 찍다, 64. 순수한 세르비아 건설을 위해, 노비사드', p.667

"유럽사 산책"은 여행기이다. 역사에 대한 충실한 설명을 기대한다면 어쩌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여행기이다. 헤이르트 마크에게는 우연히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역사학자나 정치가, 저널리스트의 목소리만큼 똑같이 중요하게 기록되어야 할 역사의 한 부분이다.

비단 이 책 때문만은 아니지만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정말로, 정말로, 역사란 무엇인 걸까. 순전히 역자에 대한 신뢰만으로 선택, 그리고 그 기대는 조금도 실망스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