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과 국가권력, 그리고 자본주의.

저자 스스로가 고백하듯, "장기 20세기"라는 제목은 이 책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등장해서, 어떻게 발전해왔고,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갈 것인가. 조반니 아리기는 20세기의 자본주의를 이야기하기 위해 15세기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에게 있어 자본주의의 역사를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금융의 팽창으로부터 시작되어 금융의 팽창으로 마무리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역학은 단지 화폐의 움직임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어떻게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느냐도 물론이지만, 자본의 축적과 축적된 자본을 어떻게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느냐 역시 자본주의의 중대한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아리기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욕구가 에스파냐의 식민지 팽창과 제노바의 금융의 결합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진전되었다고 설명한다. 지중해 무역경쟁에서 밀려난 제노바는 새로운 자본축적 루트를 열기 위해 무력을 가져야 했고, 신흥패권국으로 발돋움하던 에스파냐의 경우엔 보다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돈이 있어야 했다. 즉 제노바의 화폐와 에스파냐의 권력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성공의 비결은 남들이 자신을 대신해 자신의 전쟁을 수행하도록 하되, 비용은 가능한 들이지 말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가능한 최저 비용을 들이는 것이다.
- 조반니 아리기 지음, 백승욱 옮김, "장기 20세기", '1장 역사적 자본주의의 세 번의 헤게모니', 그린비, p.91

에스파냐가 쇠퇴하고 네덜란드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무역의 중심도 이동하게 된다. 네덜란드는 산재해 있던 기존의 중심지들을 한 곳(암스테르담)으로 통합하려 했으며, 이러한 요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보다 포괄적인 민족국가를 성장시켜 나갔다. 동인도회사와 같은 국가-기업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17세기에 이르러 자본의 보호는 민족국가의 과제가 되었다.

네덜란드를 패배시킨 영국은 더욱 거대한 제국이었다. 세계가 무대였으며, 무역 뿐만 아니라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생산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식민제국으로써의 영국의 모습은 네덜란드보다는 그 이전의 에스파냐-제노바 연합에 가까웠다. 독점적인 국가-기업의 형태는 서서히 사라지고(물론 함선외교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보호비용을 각 지역에 부과하고 싶어했을 뿐이었다.), 시장이라는 이름 하에 국가는 통화와 노동력, 무역을 관리하는 정도로 제역할을 한정지었다.

그리고 20세기가 되면 식민제국들이 해체되는 가운데 미국이 부상하게 된다. 미국은 화폐와 군사력, 생산의 중심이자, 또한 거래의 중심이기도 했다. 다시금 하나의 중심지(뉴욕)가 뚜렷하게 드러났으며, 국가의 활동반경이나 역할이 보다 폭넓고 광범위해졌다. 대규모 군산복합체와 같은 국가-기업의 형태는 패권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 원동력이 되었다.

세계체계에서 자본주의 국가의 팽창은 그것이 의존하는 이동자본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을 침식하지 않고서는 무한히 진행될 수 없다. 이런 경쟁에 대응하려고 형성된 국가권력과 자본권력 사이의 동맹이 조만간 너무가 강력해지는 지점에 이르러, 이 동맹이 경쟁 자체를 제거하고, 따라서 더 고차적 질서의 새로운 자본주의 권력이 등장할 가능성까지 제거해 버린다.
- '서론', p.58

자본의 과잉축적은 끊임없이 더 넓고 새로운 투자처(어쩌면 투기라고 불러야 할)를 요구하고 만들어 나간다. 아리기는 이를 금융의 팽창으로 촉발되는 중심지 이동의 순환과정으로 간명하게 도식화하며, 또한 이 과정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자본권력과 국가권력 사이의 협력관계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설명을 제시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아리기가 이후의 자본주의가 개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보다는 새로운 자본의 중심으로 과연 어디가 부상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데에 더욱 관심이 있어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아리기의 '장기 21세기' 시나리오는 나름의 설득력을 갖추고 있으며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의 시나리오에서 실제적인 삶의 풍경들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자본주의는 차라리 반시장의 영역에 위치한다'라는 페르낭 브로델의 생각으로부터 시작하는 서문에 비해, 마무리가 영 찜찜한 것 같다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