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웨지우드가 한 사람의 학자이길 원했다면, 아마 이런 책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책은 30년 전쟁의 모든 면면을 다 담아내고야 말겠다는 야심과는 거리가 멀다. 한 사람의 스토리텔러이자, 또 그보다도 앞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녀는,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과연 이 전쟁이 어떠한 의미였을까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하려 한다.

역사서는 대개 서술된 시기의 사정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내가 이 책을 쓴 1930년대 후반은 대공황의 여파가 크고, 독일에 히틀러 정권이 수립되고, 에스파냐 내전이 터져 굶주린 사람, 쫓겨난 사람, 박해받는 사람, 추방된 사람들이 온갖 어려움을 겪고 불안에 떨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 책은 인간의 고통을 주요한 주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30년 전쟁이 초래한 고통은 필설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정책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것이 역사의 중요한 교육적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 C. V. 웨지우드 지음, 남경태 옮김, "30년 전쟁", '1963년판 서문', 휴머니스트, p.6

종교갈등으로 촉발되어 이권다툼으로 끝난 전쟁, 유럽 최후의 종교전쟁이자 최초의 국제전, 유럽 정세의 대전환 등 여러 관점에서 여러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빅토리아 웨지우드에게 30년 전쟁이란, 일상의 삶과 유리된 그들만의 다툼으로 인한 일상의 파괴라고 정리해볼 수 있을 듯 싶다. 그녀는 이 전쟁의 주역들을 세심하게 묘사하며 하나의 공통점을 이끌어낸다. 즉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건, 제후들이건, 영국과 프랑스, 에스파냐,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등의 군주들이건, 그들은 한결같이 고집스러운 인물들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성격이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는 결함이라 단정지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중요한 정책판단자일 때, 게다가 전쟁이라는 위험에 처해있을 때에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그들의 고집은 끊임없는 약탈과 고통의 연장을 낳았다. 전쟁으로 인해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던 농민들은 군대를 부양하기 위해 곡식을 바쳐야 했고, 풍요롭던 보헤미아, 아우크스부르크, 마그데부르크 등의 여러 도시와 지역들이 잿더미가 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전쟁은 아무런 이득도 안겨주지 않았다. 입에 풀칠이나마 하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군대에 복무했던 이들도, 결국에는 종전과 함께 이미 파괴되어버린 삶으로 다시금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정책, 명예의 실추, 양심의 가책, 여론의 비난에서 오는 극심한 심적 고통은 독일 지배자들에게 전쟁을 후회할 원인은 되었을지언정 평화로 얻은 혜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일 지배자들 중 누구도 집을 잃고 한겨울 추위에 나앉은 사람도, 입에 풀을 문 채 죽은 사람도, 아내와 딸이 성폭행을 당한 사람도 없었다. 극소수만 흑사병에 걸린 게 고작이었다. 그들은 목숨이 위태롭지도 않았고 먹고사는 데 걱정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고통이 아니라 정치의 견지에서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
- '6장 교착: 1628~30년', p.327

인물 중심의 서술 탓에 전쟁사적 측면에서나, 균형감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30년 전쟁"은 인간이라는 견지에서 해석되지 않는 사실이란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역사가의 임무란 사람들이 잊고 싶어하는 것들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라던 에릭 홉스봄의 말이 떠오른다. 역사에서 아름다운 시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겪어왔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러한 고통이 사라지는 날도 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더 이상 고통에 대해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면, 바로 그 때가 판도라의 상자에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순간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



p.s. 뒤늦게나마 이 책의 번역자이신 남경태 선생에게 감사드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