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2년 11월 16일. 아마도 이 날은 인류사를 통틀어 가장 이해하기 힘든 날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콜럼버스와 에르난 코르테스 이래로 이어진 정복의 물결은 어처구니 없는 장면들 투성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잉카의 몰락은 하나의 세계가 너무나도 간단하게 무너져내리는 모습에서 일종의 비현실감마저 느끼게 한다.

피사로와 168명의 이방인들. 그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은 오로지 재화일 뿐이었다. 소유는 곧 성공을 의미했으며, 금이건 사람이건 응당 자신의 '것'이 되어야만 했다. 아즈텍을 정복하고 부와 명예를 거머쥔 에르난 코르테스야말로 장미빛 미래로 이끌어주는 본보기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단지 금빛 나는 도시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이 없었다. 지명은 자신의 소유를 문서화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었고, 그곳에 어떠한 사람이 사는지, 어떠한 삶을 이루어왔는지 따위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도 없었다. 원주민들이란 자신의 토지에 사는 또 다른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으며, 순순히 자신의 주머니만 채워준다면 문제될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그러므로) '정복'이란, 모험의 문제가 아니라 평생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각오가 된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이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페루 땅에서의 정복사업은 노후에 편하게 살아갈 땅을 찾는 문제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 킴 매쿼리 지음, 최유나 옮김, "잉카 최후의 날", '5. 황금이 가득한 방', 옥당, p.177

하지만 킴 매쿼리는 잉카를 일방적인 피해자로만 규정짓지는 않는다. 안데스를 휩쓴 정복자들의 행렬을 마치 소설같은 느낌으로 서술해나갈 뿐이다. 잉카는 안데스를 정복했으며, 황제가 되기 위한 권력다툼으로 피를 뿌렸다. 스페인은 잉카를 정복했으며, 총독이 되기 위한 권력다툼으로 또 다른 피를 뿌렸다.

과연 문명이란 무엇일까, 또 야만이란 무엇일까. "잉카 최후의 날"에서는 과연 이 둘이 얼마나 구별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날선 의문이 담겨있다. 어쩌면 문명과 야만이란 이해관계를 얼마나 세련되게 포장할 수 있는지로 구분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