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것의 세계사. 워낙에 방대한 내용이라 간단하게 요약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딱 한 마디로 줄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먹고 사는 것, 페르낭 브로델은 밥그릇 안에 세계의 모습을 담아내려 한다.

경제는 불평등을 더욱 확대하며 세계-경제 속에 공존하는 파트너들을 빈곤 혹은 부유함 속에 가두고 이들에게 아주 장기간 계속될 역할을 부여한다. 한 경제학자는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가난하기 때문이다." 또 한 역사가는 "성장이 성장을 부른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어떤 나라가 부유해지는 이유는 이미 부유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 (중략) ... 하나의 경제, 사회, 문명, 혹은 정치적 총체에서 구속력을 가진 과거가 일단 형성되면 그것을 깨는 것이 힘들어진다.
-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II, 세계의 시간", '제1장 공간과 시간의 분할 : 유럽", 까치, p. 56-58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무대는 15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앙시앙 레짐의 세계이다. 밀과 쌀, 옥수수 등 주식을 이루는 곡물을 비롯, 고기와 주류, 커피, 설탕, 향신료, 담배와 같은 음식에서부터 주거와 의복, 기타 각종 사치품까지 페르낭 브로델은 우선 의식주를 통해 점차 성장해가는 도시의 밑그림부터 그려나간다.

점차 윤곽을 드러내는 도시들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는 문득 질문을 던진다. 도시에는 항상 시장이 있다. 따라서 시장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란 도대체 무엇일까라고.

하나의 계서제, 하나의 질서가 자리잡고 있으나 이것은 끊임없이 낡아가다가 어느날엔가 무너져 앉는다 ; 그러면 새로운 인물들이 최정상에 도달하는데 이들이 하는 일은 십중팔구 과거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다.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I, 교환의 세계", '제5장 사회 혹은 전체"집합"', p.675

고대의 노예제, 중세의 농노제, 근대의 산업혁명과 현대의 자본주의. 이렇게 정형화된 도식이란 그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뿐, 오로지 콩종크튀르, 즉 각 순간마다의 국면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페르낭 브로델의 생각이다. 매우 느린 속도로 서서히 변화하는 콩종크튀르, 그에게 역사란 이러한 장기지속의 과정과도 같다.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를 전혀 새로운 것도 낯선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시장이 늘 있어왔듯이, 자본주의 역시 언제나 존재해왔다. 먹고 사는 생활이 펼쳐지는 일상, 그러한 일상을 지탱하며 시장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경제, 그리고 그러한 세계-경제의 상층부를 이루는 자본주의, 사회란 곧 이 세 가지의 층위로 구성되고, 어느 시대에서나 계서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예제이든, 농노제이든, 임금노동제이든, 이는 결국 사회 혹은 역사에 따른 계서제의 다른 모습들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장경제라는 층의 옆에, 차라리 그 위에, 반(反)시장의 영역이 있다. 이곳은 가장 약삭빠르고 가장 강력한 자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의 영역이다. 그것은 산업혁명 이전이나 이후나,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이다.
- 같은 책, '제2장 시장과 경제', p.323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건, 왜 중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도시의 발달, 화폐경제, 자본의 집중, 주변지역의 식민화 등 페르낭 브로델은 18세기까지 중국도 충분히 영국만큼 산업혁명의 조건들을 달성했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그가 찾은 해답은 상당히 의외이다. 바로 인력을 사용하는 비용에서 차이가 났다는 것. 기술과 과학의 발전 그 자체보다는 필요가 바로 산업혁명의 진정한 동력이었고, 사람값이 싼 중국에서는 굳이 기계를 발명하고 도구를 개선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장이라는 개념을 총체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 사회 전반의 성장이 없는 어떤 특정 부분만의 성장은 반드시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경제의 성장은 정치의 성장을, 정치의 성장은 문화의 성장을, 문화의 성장은 과학의 성장을 요구하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퇴보한다면? 그것도 마찬가지.

마지막으로 두터운 양이 부담스럽기만 하다면, 마지막 권의 마지막 결론부인 '결론: 역사와 현실'만큼은 꼭 한 번쯤 권해보고 싶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페르낭 브로델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세계의 모습이 가장 압축적으로 잘 드러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