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 죽음을 눈 앞에 둔 노인의 읊조림. 두서없는 말이 마치 기억의 곳곳을 해부하듯 끝도 없이, 나직하게 이어져간다. 그저 마치 "내가 왕년에는 말이지"로 시작되는 나이 드신 분들의 향수인 것만 같았던 이야기는, 어느샌가 역사의 그늘로 감추어진 성찰없는 고백으로 변모되어, 아옌데와 피노체트 정권을 전후로 한 험난한 역사 속의 개인들을 향해 거침없이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너는 무엇을 했는가. "칠레의 밤"이 던지는 돌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신념으로 행동하는 이들이나 아니면 그저 체념 상태에 빠져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는 이들에게도 조용히 자신들의 일상을 지켜나가기만을 바라는 소시민들에게도, 시절의 흐름에 약삭빠르게 적응해가는 기업가들에게도, 국가의 영광이란 단어에 도취되어 환상을 꿈꾸었던 국가주의자나 혹은 역사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곤 어찌할 바를 몰랐던 공산주의자들에게도, 오로지 성당을 망쳐놓는 비둘기와의 전쟁에만 관심이 쏠려있었던 성직자들과 문학이라는 이름의 보호막 아래서 자신들만의 지적놀이로 만족했던 지식인들에게도, 이 혼란한 역사를 함축하는 이름들, 아옌데와 피노체트, 심지어는 네루다에게도 서슴없이 '너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돌팔매를 던진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했는가. "칠레의 밤"에서의 화자 세바스티안의 무자비한 냉소는 결국 스스로를 향해 돌을 던지게 된다. 혼란한 역사에서 제 나름대로 선택하고 적응해가는 사람들에 대한 가혹한 시선으로 가득한 기억에는 '칠레여!'라고 울부짖기만 할 뿐 정작 그 혼란한 역사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는 보수적인 성직자이자 문학가였고, 평론가이자 유력한 언론인으로써 평생을 살아갔지만, 그런 그의 삶이란 타인의 호의와 스스로의 침묵 위에 쌓아올려진 것에 불과했다. 짧막하게 묘사되는 아옌데 집권기 시절에 대한 기억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그의 인생을 요약해 보여준다. 아옌데가 집권하던 날, 그는 세상을 한탄하며 그리스의 고전을 꺼내어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칠레의 혼란 안에서도 그저 그리스의 고전만을 계속 읽어갈 뿐이다.
쿠데타가 일어나던 날 마침내 고전을 내려놓고 그가 던지는 말이란 고작해야 다음과 같다.

그때 나는 읽고 있던 페이지에 손가락을 대고 평온한 상태로 생각했다. 참 평화롭군. 나는 일어나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정말 조용하군. 하늘은 파랬다. 여기저기 구름이 표식을 해놓은 그윽하고 깨끗한 하늘이었다.
- "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p. 100, 열린책들, 2010

결말에 다다르면 "칠레의 밤"은 '나는 몰랐으니까, 이 놈도 저 놈도 나쁘니까, 내가 무얼 할 수 있었겠어'라는 식의, 비겁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한 인간의 장황한 변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로베르토 볼라뇨는 단 두 문단, 너무나도 긴 하나의 문단과 또 너무나도 짧은 하나의 문단으로 구성된 변명을 통해 역사에 대한 책임을 그 역사 속에서 살아간 모든 개인을 향해 돌려놓는다.

너는 무엇을 했는가. 그런데 나는 무엇을 했는가. "칠레의 밤"은 가급적 단숨에 읽고 곧장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한 노인의 주마등과도 같은 이야기가 곧장 현실로 다가오는 소름끼치는 경험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