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허쉬호른Thomas Hirschhorn

1957년 스위스 베른 태생의 설치예술가. 파리를 기반으로 작업활동을 해오고 있다.

"하여튼 사람들 하는 짓 좀 보라고! (그러면서 그는 골프채를 들어 파리 시내 방향을 가르켰다.) 그들은 교통 체증으로 꽉 막힌 길에서 차 속에 웅크리고 앉아 그 안에 장착된 기막힌 스테레오 라디오로 "전원 교향곡"을 들으면서,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에 끼여 탄 사람들보다 자기가 한결 자유롭다고 믿으며 만족스러워 한다니까! 또 시루 속 콩나물처럼 만원 지하철에 끼여 탄 사람들도, 야자수며 홀딱 벗은 여자들이 나오는 광고들이 줄줄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서, 그물 침대에 누워 낮잠 자는 줄루 족보다 자기가 더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만족스러워 하지요! 사실 그들은 피학증 환자랍니다. 그들은 짓밟혀 으깨지는 것을 엄청 좋아하지요."
- 앙리 프레데릭 블랑Henri-Frederic Blanc, "잠의 제국L'Empire du Sommeil", 임희근 옮김, 열린책들, p.113-114


Thomas Hirschhorn, La Série des Antalgiques (Doliprane)
Works on Paper (Drawings, Watercolors etc.), 79.2*83.8cm, 2005
Gladstone Gallery 소장, 출처 : http://www.artnet.com/


토마스 허쉬호른의 작업을 바라보는 첫인상에서 정신사납다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는 작품 안에서 그야말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한다. 최대한 구겨넣을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많이 구겨넣는 것은 물론이고, 그를 위한 무한반복적인 재생 역시 필수이다. 그의 작업은 거의 대개 '이건 좀 너무한데'라는 피로감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유지한다.

"Serie KS, 2002" 연작에서 그는 전시장 안에, 혹은 심지어 하나의 캔버스 안에 도시를 걸어가며 볼 수 있는 모든 풍경을 집약해놓는다. 매일마다 신문을 채우는 온갖 종류의 스토리들, 그 틈새마다 비집고 들어앉아 매시간마다 반복되는 광고들, 밑도 끝도 없이 걸음걸음마다 사람들의 뇌리를 파고드는 선전문구들을 하나 하나 따라잡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지경이다.

"Too Too-Much Much, 2010"는 그의 정신사나움, 과도함을 넘어서는 과잉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보이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빈 깡통들은 관람객들에게 발을 딛고 설 틈조차 주지 않는다. 관객과의 거리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다른 예술가와는 달리, 마치 토마스 허쉬호른은 오히려 그들의 발길을 밀쳐내려 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마치 매일마다 쏟아지는 끔찍한 뉴스들이 개인의 삶과 세상 사이의 거리를 더욱 멀찍이 벌려놓듯이, 조금이라도 빈 공간이라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달려드는 광고들이 감각의 휴식이나 대피를 위한 모든 비상구를 차단해놓았듯이 말이다.

그의 작업은 대단히 일방적이다. 하지만 상하적이거나 수직적인 일방성이 아니라, "Cavemanman, 2002"나 "Eye to Eye Subjecter, 2010"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무수한 이미지와 정보로 구성된 세상과 이런 세상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개인 간의 일방성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흔히 익명성이라고 칭해지는 이런 일방성 안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인간적인 친절은 기껏해야 '고객님'에게 제공되는 서비스가 전부이다. 그리고 그의 무절제한 작업들로 잔뜩 피로해진 체력을 보강해주는 것 역시 숱한 광고문구로 치장된 음료 이외에는 찾기가 어렵다. 빈 깡통들 위를 거닐며 또 다른 깡통을 뜯는 것, 토마스 허쉬호른에게 현대도시에서의 삶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


더 많은 작품보기 (MoMA)
더 많은 작품보기 (artnet)
더 많은 작품보기 (Too Too-Much Much 설치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