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양쯔강을 따라서"와 "집으로 가는 기차"에서도 짙게 드리워졌던 그림자. 창 융이 참여한 작품들에선 이상하게도 한국의 과거를 느낄 수가 있다. 헝그리 정신, 근성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낼 수 있다는 믿음, 성공과 그에 뒤따르는 화려함에 대한 갈구, 바닥에서 정상으로 이르는 감동적인 인간신화를 보고 싶어했던, 그리고 그 주인공이 되고 싶어했던, 결핍감. 시골에서 도시로,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가 곧 정의가 되었던, 너무나도 차가운 도시의 뒷골목 뒤로 점점 높아져가는 빌딩숲의 환상곡.

오직 한 사람의 성공으로 모든 부조리와 고통을 정당화해내는, 그런 잔인함은 창 융의 작업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복싱을 통해 포착해내는 중국의 모습은 부조리와 고통 안에 결국 머무를 수 밖에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시골을 벗어나 도시에서 화려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 순진한 소년들, 이런 순진한 바람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힘겨운 삶이 자식들에게만은 이어지지 않길 바라는 부모들의 모습은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들처럼, 고통의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 바닥으로 추락해, 조폭들을 이상화하는 바로 그 장면들을 다시 재현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들어온다.

막연한 믿음의 그림자를 쫓아다니는 창 융의 작업은 지키고 싶은 것들이 사라져가는 풍경을 관조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지아 장커의 작업만큼이나 앞으로도 상당히 기다려지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