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위로 쌓여진 희망.

6월 25일은 전쟁의 상흔을 기리는 기념일이 되었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들 역시 점차로 사라져간다. 그 때 그들은 무엇을 위해 죽어야만 했고, 또 살아남아야만 했는가.

"순교자"에서 국가와 종교는 적어도 두 가지의 공통점을 지닌다. 스스로를 지키고자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 전쟁기간 동안 '전략상 후퇴'라는 명목 아래 포기된 생명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사후의 천국'에 대한 약속이 과연 현재의 절망을 감내해야 하는 이유로 충분한 것일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죄없이 죽어가는 백성들을 그저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국민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그에 의해 지켜지는 국가는 국민들의 겪는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다.

작년에 작고한 고 김은국 작가는 묻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어린 양들을 돌보는 선한 목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존재가 스스로의 존재이유에 대해 외면하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무슨 이유로 그 존재를 애써 믿고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사람들을 속여서 만사는 괜찮게 될 것이다. 하늘에 있는 신은 그들을 잘 보살펴 주고 국가는 그들의 운명을 진지하게 걱정해 주고 있다고 믿게 하기 위해 그러고들 있는거야. (중략) 그래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여전히 죽어 가란 말이지?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기만당한 채?"
- 김은국 지음, "순교자", 을유문화사, 2004, p. 235-236

'독자에게 드리는 글'에 쓰여있듯, 이 작품의 제목으로 "순교자"란 이름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죽은 자는 그저 죽은 자일 뿐이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응답없는 자에게 죽은 자의 질문은 그저 허무하고 의미없는 것에 불과하다. 살아있는 사람들만이 이 침묵의 대화 안에서 고통을 더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