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거짓말이다.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를 한 마디로 이야기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감독은 첫 장면부터 객석을 향해 도발을 걸어온다. 당신은 왜 영화관에 왔는가, 도대체 무엇을 보려고 온 것인가, 영화 속엔 아무 것도 없다고 내뱉듯 이야기한다. 그리고 문화라는 단어가 지닌 전영역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헐리우드와 성조기로 이어지는 미국식 상업문화, 프랑스의 문학과 레스토랑으로 대변되는 유럽식의 교양, 비틀즈와 히피, 대학가와 학생운동으로 이야기되는 하위문화, 기독교, 불교, 남묘호랑교 등을 가로짓는 포괄적인 종교, 어딘지 모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비틀어놓은 것만 같은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 축구, 권투, 비행기, 담배, 마약, 사창가, TV, 철학, 책, 음악, 학교, 가족, 전통, 윤리, 유머 등등 흑백의 자조로부터 녹색의 현실로, 다시 보라색의 환상에서 컬러의 일상으로 쉴새없이 변화되는 색조만큼이나 마구잡이적이고 전방위적인 공격은 그야말로 아찔하고 정신을 잃게 할 지경이다.

28일의 제작기간과 138분의 상영시간. 엔딩크리딧마저도 철저하게 틀을 거부하는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는 객석에 조용히 자리를 채운 관객들을 비웃는 작품이다.

나는 무엇을 보기 위해 영화관에 왔던가. 2012년 전주영화제의 거리를 채운 건 축제의 단순한 혼잡함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