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지만, 약간쯤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구성.

헨리 지거리스트에게 문명은 곧 질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부터 교양과 지성사에 이르는 다양한 사례와 분석, 경제와 사회, 법률, 역사, 종교, 철학, 과학, 문학, 미술, 음악 등 문명의 거의 전부분을 오가는 개요를 통해 "문명과 질병"은 인류의 문명이 걸어온 발자취의 곳곳에 남아있는 질병의 흔적들을 찾아나선다.

하지만 이 때문에 약간쯤은 구성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역사책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서사적인 시대구성을 통해 서술되었다면 질병이 문명에 끼친 영향과 문명이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의 흐름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꼭지마다 구분되어 제시되는 산발적인 구성으로는 질병이 문명의 각 부분에 끼친 영향은 잘 살펴볼 수 있지만, 질병의 문명사의 메끄러운 흐름을 잡기에는 다소 어렵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의 목표는 질병을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사회의 의미있는 일꾼으로 되돌려주는 것, 또는 질병이 환자를 덮쳤을 때 재정비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의학의 임무는 환자의 신체적인 회복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병이 나기 전에 누렸던 사회적인 위치에 복귀하거나 필요하다면 새로운 자리를 찾을 때까지 계속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의학이 기본적으로 사회과학인 이유다."
- "문명과 질병", '제3장 질병과 사회생활', 헨리 지거리스트, 황상익 옮김, 한길사, p.134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헨리 지거리스트가 수없이 찾아낸 구체적인 실증 부분이 아니라, 폭넓은 조망의 틈새마다 틈틈히 베어나오는 그의 확고한 신념들이다. 그는 어떤 특정한 질병이 사회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 그리고 그 피해가 어떤 식으로 영향이 나타났는지를 단순히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의료행위'를 하나의 담론으로서 바라보려고 한다. 헨리 지거리스트에게 치료란 질병의 중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본래의 생활을 되찾는 것이 곧 치료이고, 이는 존엄성의 회복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에 사회가 인간을 어떤 가치를 통해 바라보고 있느냐하는 문제가 곧 '의료행위'로 직결되게 된다.

"정부의 공중보건 활동은 항상 두 가지 요소에 영향을 받아왔다. 의학의 수준과 정치철학이다."
-  같은 책, '제4장 질병과 법률', p.165

어쩌면 위에 인용된 헨리 지거리스트의 말은 의학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의 모든 부분으로 확장가능한 명제가 아닐까 싶다. 한 사회에서 용인되는 하나의 행위는 곧 그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종교수준과 정치철학, 과학수준과 정치철학, 경제수준과 정치철학, 예술수준과 정치철학은 거의 항상 뗄레야 뗄 수 없는 의존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모든 문제는 결국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 사회가 이름 없는 한 사람의 인간을 얼마나 가치있게 여기느냐로 귀착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