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urizio Cattelan, "La Nona ora",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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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fuzzyladies.blogspot.com/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1960년 이탈리아 파도바 출신의 조각가.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저 멀리 한 남자가 있다. 횅하니 크고 텅 빈 방 안에서 무릎을 꿇은 그의 뒷모습은 한없이 고독하고 왜소해보이기만 한다. 움츠려든 자세, 그는 왜 이 아무 것도 없는 이 큰 방 안에서 홀로 무릎꿇고 있을까. 슬픔에 빠져서 그런 것일까. 걱정스레 조금 다가가보면 그가 두 손을 모으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다. 그는 기도 중이었다. 거대한 공간 안에서 한없이 작은 그는 신과 만나고 있었다. 경건한 사람이다. 아마도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그의 그런 표정이 보고 싶어 좀 더 다가가본다. 그리고 마침내 양복 옷깃 위로 얼굴이 드러난다. 그는 히틀러였다.

시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나치라는 소재가 이어지는 "그를Him, 2001"과 "구원하소서Ave Maria, 2007"만 보더라도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업은 상당히 도발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나치의 잔학함이 아닌 평범함에 주목한다. 사실 너무나도 평범해서 어릿광대처럼 우습게 보일 정도이다. 그의 대표작 "제구시La Nona ora, 1999"만 보더라도 크고 웅장하다고 믿어지는 모든 것들을 작고 왜소하고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그의 대단한 재능을 느낄 수 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을 차용한 이 작품에선 카톨릭교의 정점이자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십자가를 든 채 유성에 맞아 쓰러져 전혀 거룩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예수의 언어를 무력하게 반복한다.

이쯤되면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분노로 명성을 쌓아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웅장한 역사적 건물 앞에서 "사.랑.L.O.V.E., 2010"의 이름으로 욕설의 손짓을 날리는 등 놀라운 작품들의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지만, 그가 자기 스스로의 모습이나 일반적인 삶을 묘사해내는 풍경은 바보스럽다 못해 치가 떨릴 지경이다. "완벽한 하루A Perfect Day, 1999" 등에서 꼼짝달싹 할 수 없이 테이프나 구속구로 사람들을 벽에 붙여놓는 작업 등 역시나 언급할만한 작업들이 많지만, 특히 당나귀를 통해 삶을 비추어내는 일련의 작업들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등에 진 삶의 무게를 단 한순간도 놓지 못하며 항상 일을 해야하는 삶의 자화상. 어쩌다 삶을 뛰쳐나가 밖으로 달려나가려는 당나귀의 도움닫기는 고작해야 갤러리의 벽에 머리를 파뭍힌 채 몸을 버둥거려야 하는 우습고 불쌍한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왜소한 삶들은 공통적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존재로 귀결된다. 시체를 덮은 모포처럼 보이는 9개의 대리석 조각 "모두All, 2007"에서 보이듯 역사 속에서 어떠한 이름을 지닌 삶도 결국은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특히 "지금Now, 2004"이나 "우리We, 2010" 등에서 인류의 소중한 유산들에 둘러싸여 위대한 작품들을 응시하며 죽음의 마지막 호흡을 조절해가는 풍경은 아마도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장 압축적으로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아닐까 싶다. 메멘토모리, 죽음을 응시하라. 죽음은 아름답지 않다. 아무리 주변이 슬퍼하고 미화하더라도, 마우리치오 카텔란에게 죽음은 결국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 삶이 얼마나 가볍고 보잘 것 없는지에 대한 극적인 증언에 불과하다.

이 벼룩은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들의 신혼침대이며 결혼식을 올린 교회.
This flea is you and I, and this
Our marriage bed, and marriage temple is;
- 존 던John Donne의 시 '벼룩The Flea' 중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업은 코메디이다. 무척이나 어색한 웃음을 짓게 하는 코메디이다. 마치 윗사람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며 놀릴 때에도 억지로 웃어야만 하는, 그런 심정과 비슷한 기분을 안겨준다. 그는 나에게 희롱을 건다. 아주 자극적으로, 입고 있는 옷을 벗어보라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나에게 관조의 태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주 가깝게 다가와선,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란 게 얼마나 편협하고 옹졸한지에 대한 농담을 그치지 않는다. 가급적이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실, 기껏해야 죽을 뿐인 삶을 살아가는 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앞에선 입고 있는 옷이 거창하면 할수록 더욱 가소롭고 우스워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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