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litin, "Hase / Rabbit / Coniglio", Artesina, Piemont, Italy, 2005-2025
Rabbit seen from the sky (one person sleeping on its belly)
© geli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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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볼프강 간트너Wolfgang Gantner, 알리 얀카Ali Janka, 플로리안 라이터Florian Reither, 토비아스 우르반Tobias Urban 등 4명의 작가에 의해 결성된 아트그룹.


지난 6월부터 시작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들려온 재미있는 뉴스가 하나 있다. 올해로 54번째를 베니스 비엔날레는 일단 전례없는 규모로 많은 화제를 쏟아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건 전시장 안의 작품이 아니라, 러시아의 재벌이자 잉글랜드 축구리그의 명문 첼시의 구단주로도 유명한 로만 아브라모비치Roman Abramowitsch의 초대형요트라고 한다. "루나Luna"라는 이름을 가진 이 요트는 길이만 해도 무려 115m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며 베니스의 시야를 가렸을 뿐만 아니라, 또 경호상의 이유로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애인과 미술관계자 이외에는 주변의 해안길마저 통과할 수 없게 막아버렸다고. 이는 블로거나 미술비평가는 물론이고 옵저버나 가디언 등의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특히나 가디언지에서는 주민들의 원색적인 비아냥도 볼 수 있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해석해보고 싶다. 돈만 많다면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어떤 짓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상류층의 사고구조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직접 기획한 특별한 전시가 아닐까 하고.

이번 글을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해프닝으로 시작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겔리틴이 이번 비엔날레의 한 파빌리온(전시장)을 장식한 예술가들일 뿐만 아니라, 또 한편으로는 이들만큼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대칭'되는 예술가들을 찾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초호화요트를 자신의 놀이터로 삼는 사람이라면, 겔리틴은 대변과 오줌을 자신의 놀이터로 삼는 사람들이다.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정제된 즐거움을 찾는다면, 겔리틴은 정신없고 산만한 즐거움을 찾는다. 그렇지만 즐겁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을 아주 충실하게 내보인다는 점에 있어서는 묘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기도 하다.



겔리틴의 작업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최소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온전하다는 의미에서의 이유를 찾아볼 수는 없다. 좌충우돌, 정신산만만큼 겔리틴의 작업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것 같다.

뉴욕 나프탈리 갤러리에서 열린 "눈 먼 조각Blind Sculpture, 2010"전에서는 제목 그대로 눈을 가린 채 엉망진창의 조각들을 만들어내고, 벨기에의 "우리 모두 함께All Together Now, 2011"전에는 물침대를 만들기 위해 모두에게 함께 소변을 보자고 요구하는가 하면, 취리히의 "카카벳Kakabet, 2007"전에서는 끝없는 대변으로 글자를 이어나간다. 이탈리아 피에몬트 산자락에 난데없이 분홍색 화장실휴지로 "토끼Hase / Rabbit / Coniglio, 2005-2025"라는 이름의 55m짜리 거대한 토끼인형을 설치해놓고는 하는 말에선 허탈해지기까지 한다 : "나는 토끼를 사랑해요. 토끼는 나를 사랑하죠.i love the rabbit the rabbit loves me. - 겔리틴 웹사이트에서"

"빌어먹을 폼 잡지 마라. 무슨 연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해. 어차피 우린 비웃음 거리야.
어렸을 땐 어른들이 비웃었고, 지금은 어린 놈들이 우릴 비웃지.
뭘 해도 손가락질 당할 게 뻔해. 그렇다고 그만 둘 순 없지. 지금 다 관두고 뭘 어떻게 하자는 거야?
뭔가 안되도 좋으니 무대에 올라가야 해.
지금 무대에 올라가서 공연하지 않으면 내가 무슨 짓을 할 지 나도 모른다.
너희들 다 죽여버릴 지도 몰라. 그러니 뭐가 되든 공연은 하는 거야!"
- 영화 "소년 메리켄사쿠Brass Knuckle Boys, 2008" 중에서

겔리틴의 이상한 놀이터는 일본영화 "소년 메리켄사쿠"의 대책없는 아저씨들을 떠올리게 한다. 꾸미지도 폼잡지도 않는다. 완전 엉망에다 뒤죽박죽, 저딴 게 예술이냐고 당연히 묻고만 싶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저래도 될까'만 치워놓는다면 상당히 즐겁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지는 모르겠지만, 겔리틴은 양복을 입고 적당히 착하게 사는 현재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진정한 펑크밴드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의 전시에서는 신들린 듯 마구 두드려대는 드럼이 있기도 했다. 두드리고, 두드리고, 돈이 많은 사람만이 제멋대로 살 수 있다는 법이 어디에 있을까. 소시민들에게도 때론 삶에 있어서의 상식이나 불편 대신 단순히 즐거움만을 최우선에 둘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