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섬세하고 절제된.

"색, 계"는 거짓으로 점철된 작품인 것 같다. 자신의 본모습과 감정을 속여야만 하는 사랑은 물론이고, 야한 영화라고 낙인을 찍은 세간의 평은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색, 계"는 그냥 잊어버리고 지냈던 작품 중의 하나였다. 특정 장면에 대한 집요한 이야기들은 그저 그렇고 그런 선정적인 영화이거나, 혹은 지독하게 탐미적인 역시 그렇고 그런 영화라는 인상을 남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안 감독의 시선에서 성에 굶주린 시선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아름답게 보이려는 노력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감정의 폭력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범죄처럼 느껴지는, 애틋한 감정들. 그는 "와호장룡"에서 원수의 제자에게 애정어린 시선을 보냈듯,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그저 한여름밤의 꿈이었을 뿐이라고 되뇌이던 고독한 남자를 끝내 놓을 수 없었듯, "색, 계"에서는 모두가 손가락질하고 증오하는 매국노를 차마 미워할 수 없었던 한 여자를 그려낸다.

탕웨이가 양조위를 위해 노래를 부르던 장면은 아마도 두고 두고 기억할만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옳은 일을 해야한다는 것도 알고, 자신에게 걸린 기대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조차 의심과 굳은 표정을 지우지 못하는 양조위의 모습 역시 자신의 삶을 향한 지독한 회의감과 모멸감으로 가득할 뿐이다. 그렇지만, 서로를 향한 감정은 정말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사치에 불과한 것일까.

조금 과장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색, 계"는 마치 중국의 "로미오와 줄리엣"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두 가문간의 원한이 보다 직접적인 폭력의 색채로 바뀌었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사는 게 영 어설프기만 한 그들에겐 조그마한 연정을 품는 것조차 더러움에 다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