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anna Reich, Line III, DVCPRO HD, PAL, 2`20, one-channel-videoinstallation, 2009
출처 : http://www.johannareich.com/



요한나 라이히 (Johanna Reich) : 홈페이지 보기

1977년 독일 민덴 출신의 비디오아티스트. 현재 쾰른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세 여자가 있다. 두려운 듯 가만히 바라만보던 그녀들이 천천히 바다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어느샌가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요한나 라이히의 "I spy with my little eye, 2006"에선 그렇게 사람들이 사라져간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에게 바다란 곧 세상이다. 그리고 화면 안에 존재하는 세 명의 여성들 역시 한 개인들의 반복에 불과하다.

"심장이 유기체 안에 있는 것처럼 고유한 신체는 세계 안에 있다."
- 메를로 퐁티, "지각의 현상학", 류의근 옮김, 문학과 지성사, p. 311

요한나 라이히는 배경 안에서 대상의 고유한 의미를 지워내려 한다. "Line, 2008-2009" 연작에서 검은 옷을 입은 그녀는 벽에다 검은 페인트를 칠하곤 그 안으로 숨어버린다. "black hole, 2009"이나 "notes, 2010"에서는 자신과 배경을 구분시켜주는 하얀 눈과 노란 포스트잇을 치워내며 스스로를 배경으로 만들어버리고, "Make it Mine, 2010"에서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입은 옷색깔과 똑같은 페인트를 칠하게 하며 그들 역시 벽 속에다 집어넣어버린다.

"monument, 2009"는 이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어'보이는 놀이들에 명확한 시야를 제시해준다. 요한나 라이히는 검은 후드티와 빨간 치마, 그리고 노란 부츠를 신고, 검은 색과 빨간 색, 노란 색의 독일국기가 되어버린다. 마치 그녀는 이렇게 질문하는 듯 하다. 과연 한 사람이 지닌 개성이 사회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한 사람이 스스로 규정하는 자신의 정체성이 과연 타인이 자신을 규정짓는 정체성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인지, 사람들은 사람의 내면을 봐야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조차 타인의 내면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오해의 소지는 있지만 메를로 퐁티라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 내면이라는 게 정말 있기나 한지?

요한나 라이히는 마치 깨부실 수 없는, 너무나도 견고해서 동화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편견이나 신화를 담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카메라를 걷어차면서 우연적인 풍경을 담아내는 "fleeting glimpse, 2009"나 물웅덩이에 비친 풍경을 잠깐 흐트러뜨릴 뿐인 "State of Crystal, 2010" 등과 같은 작업에선 보는 이에게 허탈감마저 들게 한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려하면 할수록 더더욱 배경이 되어버릴 뿐, 아주 잠깐의 파장은 이내 본연의 평온함으로 되돌아가버릴 뿐이다. 마치 독일국기로 독일인 개개인 모두를 규정짓는 것처럼 그녀의 작업에선 견고한 침묵이 감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