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마침내 가짜 거북이 말했다. "나는 진짜 거북이었어."
그리고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루이스 캐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가짜 거북의 이야기' 중에서)


요즘처럼 뉴스를 보기가 싫었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려오는 안 좋은 이야기들 덕분에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다. 어제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소식에도 무덤덤한 자신을 바라보며 소름마저 돋아올랐다. 이런 이야기는 하면 안 되겠지만, 가끔씩 사람들이 어떻게 제정신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삶에 지친 듯한 표정들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필사적으로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다녀야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겨우 맞은 휴일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던 플린이 기어이 나를 청담동으로 불러내고야만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 같다. 쉴틈없이 암울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도 그의 눈길은 무언가를 찾아야만 한다는 모종의 절박함으로 번뜩거렸다.





그렇게 배회하다 찾아낸 한 장소. 갤러리 익. 그동안 왠지 모를 어려움에 발길을 넣지 못하던 오페라갤러리에서 왕칭송의 작품들을 발견하곤 잔뜩 호들갑을 떤 후, 용기를 내어 좀 더 깊숙이 들어가보자며 그는 나의 등을 떠밀어버렸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린 금광을 발견했다. 그 많다던 청담동의 갤러리들이 전부 어디있나 했더니만... 그리고 그 중에서도 '힌츠 앤 쿤스트'의 금속공예품을 판매하는 갤러리 익을 발견한 건 정말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Art for Everybody"

현재의 한국에서 예술은 조금 과장하면 아마도 이렇게 정의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는 사람들은 무시하고, 모르는 사람들은 기피하는, 안타까운 처지? 그래서 '힌츠 앤 쿤스트'의 작업들은 한눈에 시선을 잡아끌었다. '아, 저런 아기자기함이라니, 이건 마치 게임 "심즈"에서나 가능할 법한 그런 시츄에이션이 아닐까?'라는 즐거운 환호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만사에 심각하기만 한 사람일지라도, 그가 선사하는 저 조그만 악단을 보게 된다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아무리 삶에 쫓기고 다른 데에 시선을 돌릴 틈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예술이라면 우선 부담감부터 생기는 사람일지라도, 저 조그만 악단을 보게 된다면...





바짝 호기심이 동한 플린이 갤러리를 지키고 있는 분께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힌츠 앤 쿤스트가 무슨 뜻인가요? 본래 힌츠 운트 쿤츠(Hinz und Kunz)라는 독일식 속어의 변형이란다. 본래 뜻은 이놈 저놈 누구나를 뜻하고, 거기에 예술이란 뜻을 지닌 쿤스트(Kunst)를 넣어 말 그대로 모든 이를 향한 예술이란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집에 돌아와 먼지 쌓인 독일어 사전을 펼쳐보니 힌츠 운트 쿤츠는 독일에서 가장 흔한 남자이름인 하인리히와 콘라드(Heinrich und Konrad)의 애칭들로, 영어로는 탐, 딕 앤 해리(Tom, Dick & Harry), 그리고 우리말로는 철수와 영희 정도의 의미라는 걸 찾아볼 수 있었다.





혹시나 싶어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마음껏, 심지어는 셋팅까지 하셔도 좋다는 친절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잘 소개해달라시던 당부도 물론 있었지만... :) 사실 청담동의 갤러리들에서 매우 신선한 점이 이런 것들이었다. 그동안 방문해왔던 갤러리에선 뭔가 질문을 던지면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가 되곤 했었는데, 확실히 컬렉터들과 접촉이 많은 편이라 그런지 오히려 먼저 다가와서 이야기를 거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고, 덕분에 자연스레 궁금증들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들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잘 찍는 편이 못 되는지라 기회를 잘 살릴 수 없었던 것이 마냥 아쉽다. 정말 많은 작품들이 있어서 일일히 담아낼 수 없었던 것도 마찬가지. 데코레이션 작품 뿐만 아니라 스카치테이프꽂이나 볼펜꽂이 등의 아기자기한 문구류도 있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특히나 체스는 정말 머스트해브하고 하고 싶을 정도로 압권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사진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이라 올리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 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드럼일지도 모른다. 이러저리 두드려대며 나는 진짜 거북이었어라며 외칠 수 있을만한 드럼. 생존을 위한 삶을 조금쯤은 씹어대며 마구 두드려댈 수 있는 드럼. 이런저런 나쁜 소식들을 한 번에 넉다운시킬 수 있을만한 드럼. 힌츠 앤 쿤스트의 저 조그만 사람이 두들겨대는 것처럼 신나는 드럼이 필요하다. 이것저것 지긋지긋할 정도로 우울하다면,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로 피곤하다면, 한 번쯤 일어서서 저 귀여운 금속인간들을 한 번 찾아보는 건 어떨까. 거기엔 신나는 스포츠카도 있고, 행글라이더도 있고, 그리고 시끄러운 소음 대신 조용한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도 있으니. 거기에다 건물을 가득 메운 갤러리들은 보너스.


갤러리 익 홈페이지
힌츠 앤 쿤스트 국내홈페이지
운영시간 : 월~금 10:00~19:00 / 토 10:00~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