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의 재발견, John Stezaker
John Stezaker (존 스테제이커)
1949년 잉글랜드 우스터(Worcester) 출신의 개념미술가.
가끔씩 이것도 예술일까하고 질문을 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아마도 존 스테제이커도 이런 작업을 해가는 작가 중의 한 명이 될 것 같다. 그는 1972년 일찌감치 "예술을 위한 예술을 넘어서(Beyond "Art for Art’s Sake)"라는 제목의 전시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더니, 급기야는 1991년 런던의 살라마-카로 갤러리에선 "왜 이런 전시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세요?(Why Spend Time On An Exhibition Like This?)"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애써 그의 작품을 찾은 관객들을 온통 혼란에 빠트려버린다.
사실 그의 작업은 한결같은 패러디이다. 빛바랜 옛 헐리우드 스타들의 사진이나 풍경사진들을 어쩌면 조잡스럽게 오려붙이는 게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마치 현재 인터넷 문화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합성패러디들을 일치감치 시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술사에서는 레디메이드라고 고쳐부르는 이러한 놀이들엔 꽤나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원본의 매끈함들에서 새로운 언어들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예술사란 곧 재발견의 역사나 다름없기에, 어쩌면 먼 미래에 또 다른 움베르토 에코가 태어난다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21세기 초반 인터넷의 본격적인 확대와 더불어 영화포스터와 TV 속 화면들을 변형한 대중예술이 시작되었다고.
"천개의 고원"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어떠한 예술도 모방적이지는 않으며, 모방적이거나 구상적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오로지 재발견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존 스테제이커의 작업이 팝아트에 대한 반동의 한 흐름에 있다는 건 꽤나 흥미로워보인다. 그는 인기스타들의 사진들을 활용하면서도, 그 대상은 전부 과거의 인물들 뿐이기 때문이다. 구닥다리 아이콘들, 마치 '모나리자'처럼 고착되어버린 아름다움을 주장하는 사진들은 그의 편집 아래 새로운 정체성을 얻는다. 그리고 그는 이런 유물들을 통해 다시금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모나리자'의 초상과 인기스타의 미를 담은 사진 간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런 사진들을 보기 위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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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우리는 스타들의 사진에 왜 열광할까? 거기에서 무엇을 보는 걸까? 거기에 자신은 조금이라도 스며있는 걸까... 글을 읽으니 질문들이 자꾸 솟아난다. 아주 논쟁적인 작품은 아니지만 충분히 그 맥락을 짚어볼 수 있는 거 같아. 계속 되는 물음표를 달고 있는 그림이랄까.
답글삭제뭐랄까, 요즘은 예술가가 뭔가 대단한 작업을 해야한다는 강박증을 버려야된다는 생각들을 해. 어떤 시선을 가지느냐가 중요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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