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위키피디아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잿더미가 된 유럽을 재건시켰던 마샬플랜이 가동되고도 2년이 지난 1953년. <까마귀(Le Corbeau, 1943)>에서의 프랑스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로 영화계에서 쫓겨나 유럽과 브라질을 방랑하던 앙리-조르주 클루조(Henri-Georges Clouzot)는 10년만에 돌아와 한 권의 소설에 매료된다. 그는 즉각 소설의 원작자 조르주-장 아노드(George-Jean Arnaud)를 찾아가 스크립트를 부탁하곤 <공포의 보수(The Wages of Fear, 1953)>의 촬영에 돌입한다.

남미의 조그만 마을로 연출하는 세계상. 남미 원주민들과 유럽과 미국에서 찾아온 이방인들이 모인 라스 피에드라스(Las Piedras)에 가진거라곤 오직 경험 뿐인 남자 조(찰스 바넬; Charles Vanel)가 찾아온다. 돈이 필요한 그는 어떻게든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하지만, 발견할 수 있는 건 오직 비행기삯이 없어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뿐이다. 그나마 자기처럼 프랑스 출신인 마리오(이브 몽땅; Yves Montand)와 함께 술집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거액을 걸고 트럭운전수를 모집한다는 미국계 정유회사의 채용공지는 마을을 술렁이게 만든다. 회사가 원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저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불안정한 폭발물만 운반하면 되는 일이었다.


<공포의 보수>는 운전기사로 채용된 4명의 인물을 통해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상을 구성해낸다. 전형적인 프랑스인 바람둥이 마리오, 나이든 전직 폭력배 조,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한 네덜란드인 빔바(피터 반 에익; Peter van Eyck), 건실하게 회사를 위해 일하다가 폐암에 걸려버린 이탈리아인 루이지(폴코 룰리; Folco Lulli)는 나름의 긍지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미국인이 흔드는 한 뭉치 돈다발 앞에서는 한 때 그들이 착취했던 남미인들과 똑같은 가난뱅이에 지나지 않았다.

세계의 무대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유럽, 자본으로 빈자리를 채워가던 미국, 그리고 늘상 이방인들에게 주인자리를 내어주던 남미를 비롯한 세계. 우습게도 60여년전에 제작된 <공포의 보수>에는 현재의 세계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정유회사로 상징되는 미국은 자본의 힘을 통해 힘들고 고된 일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둔다. 자존심도 인간성도 자본의 힘에는 영 무력하기만 하다. 실제로 <공포의 보수>는 반미주의를 조성한다는 비판 아래 미국개봉 당시 몇몇 장면이 편집당하기도 했으며, 미국 타임지는 올해 칸영화제를 소개하며 자체선정한 역대 최고수상작 10편 중에 <공포의 보수>를 꼽아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내기도 했다.

흑백의 첨예한 긴장감, 공포로 변해가는 인간성. 앙리-조르주 클루조는 살기 위해 죽음과 가까워져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탁월하게 묘사해낸다. 마치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As I Lay Dying)>처럼 역경을 헤쳐나갈수록 인물들은 점점 비참해질 뿐이다. 게다가 우연인지, '강'을 건너며 다리가 부러진 남자의 표정에선 꼭같은 삶에 대한 실망감과 허무함을 엿볼 수 있다. 성냥곽을 아무리 손가락으로 두들겨봐도, 담뱃잎을 아무리 질겅질겅 씹어봐도, 삶에서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울타리 뒤에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