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위키피디아


찬송가처럼 교가가 울려퍼지는 학교. 그곳에선 누구나 규율을 따라야 한다. 상명하복이 곧 미덕이요, 학생들은 시종처럼 선생님의 시중을 들어야 하며, 선도부는 마치 절대왕정기의 법률가들처럼 학생들의 자유를 억누르며 특권을 보장받는다. 두발길이는 악의 근원이다. 신입생은 반드시 상급생들의 이름을 외워야만 한다. 점호는 기본, 한치라도 질서와 청결에서 어긋나게 되면 처벌이 뒤따른다. 이런 끔찍한 획일화에 저항하기 위해 <품행제로(Zero de conduite, 1933)>의 학생들이 배게를 들어올렸다면, <이프(If..., 1968)>의 학생들은 총과 수류탄을 들어올린다.

상상력과 자유를, 1968년의 꿈과 좌절. 경직된 전통과 강요되는 희생에 분노한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1950년대 중반을 기해 촉발된 사회비판의 흐름이 학교와 직장을 뒤덮었고, 개인의 불행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던 정부는 금방이라도 힘을 잃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모든 혁명이 그러했듯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극적인 삶의 변화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뒤따른 불황은 사람들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보냈다. 그래서 <이프>는 가정법이다. 만약 지붕 위로 올라갔던 학생들이 끝까지 무기를 놓지 않았다면, 기성세대에 끝까지 맞써 싸웠다면, 세상이 어떠한 모습을 지니게 되었을까에 대한 미련을 던진다.

현실이 될 수는 없었던 이상. <이프>는 총을 든 영화감독 린제이 앤더슨(Lindsay Anderson) 감독이 지녔던 모든 생각과 가치, 시각에 대한 총집결과도 같다. 제도권에 대한 불만, 끝내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대중에 대한 실망감, 성적 판타지, 불안한 미래, 멋있는 일탈에 대한 동경 등이 마구잡이로 뒤섞이며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이프>는 예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세상의 모양과 산산히 흩어져버린 프리시네마(free cinema)의 동지들에 대한 좌절감에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좌절이 허무하지만은 않다. 당연한 말이지만, 더러 실패는 성공보다도 더욱 큰 의미를 남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