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히드 페르손, “왕비와 나(The Queen and I, 2008)”
역사의 아이러니.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다고 했던가. 1979년 이란의 혁명은 팔레비 왕가를 쫓아내고 프랑스에서 망명 중이던 종교지도자 호메이니를 다시 불러들였다. 하지만 공화국 설립의 기쁨도 잠시 뿐. 왕정보다 더 잔악했던 신정이 이란의 시민을 압박해갔다. 왕가를 쫓아내는데에 가장 열성적이었으나 자신 또한 새로운 정부에 의해 쫓기는 신세로 전락해버린 나히드 페르손 감독은 <왕비와 나(The Queen and I, 2008)>에서 자신의 오랜 숙적, 왕비를 만난다.
30년에 가까운 세월. 서로가 가진 생각과 망명의 이유는 달랐으나, 두 사람 모두 망명길에서 가족의 일부와 자신의 삶 전부를 잃어버린다. 고향을 밟을 수 없는 자들의 슬픔. 여전히 우아하지만 불행한 개인사 때문인지 다소 방어적인 왕비에게 차마 날선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나히드 감독의 고민. 객관적으로 이란의 역사를 바라보고 싶어했던 감독의 의지는 자신의 상처를 공유하고 치유하기를 바라는 두 사람의 영상으로 바뀌어간다. 결국은 사람에 불과하기에, 혼란에 빠져버린 나히드 감독의 자그마한 변명, 하지만 가장 진실한 언어.
<바더 마인호프(The Baader Meinhof Complex, 2008)>의 첫장면을 기억하시는 분들에게 더욱 권할만한 작품.
0 Comments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