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독립군 IRA의 역사는 1921년을 기점으로 나뉜다. <헝거>가 현재의 IRA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은 아일랜드 독립전쟁이 본격화된 1920년을 찾아가는 작품이다. 전쟁의 발발, 아일랜드의 분리, 그리고 이에 따른 IRA 내부의 갈등. 한국이 광복 이후의 분단이라는 시련이 찾아왔듯, 아일랜드 또한 부분독립이라는 아픔을 겪게 된다.

아일랜드의 평화로운 농가에서 살고 있던 데이미언(킬리언 머피)은 의사가 꿈인 청년이다. 그는 런던의 한 병원으로부터 일자리를 제의받아, 떠날 날만을 기다리며 가족 및 친구들과 즐겁게 지낸다. 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영국군으로 인해 친구가 죽게 되고, 형 테디(패드레익 딜레이니)로부터 IRA에 가담하라는 청을 듣는다. 자신의 꿈을 위해 애써 슬픔을 감추던 데이미언은 떠나려는 기차역에서 아일랜드인들을 괴롭히는 영국군을 보며 복잡한 심경에 젖는다.

마침내 발걸음을 돌리는 데이미언. 그는 형 테디에게 찾아가 IRA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들은 영국군을 급습하여 승기를 거두고 무기를 빼앗는 등 큰 수확을 거둔다. 하지만 내부의 밀고로 인해 이들은 영국군의 기습을 받아 일망타진되어, 모진 고문이 이어지는 감옥에 갖히게 된다. IRA 단원들을 안타깝게 여긴 아일랜드계 병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 데이미언과 동료들은 밀고자를 찾아나선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순수하게 아일랜드의 독립만을 보고 달려갔던 형 테디와 정치와는 무관히 자신의 꿈을 추구하려 했던 동생 데이미언이 격변하는 시대에서 변해가는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해간다.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에서처럼 형제는 이 작품의 은유이자 상징으로 작용한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우리가 왜 이렇게 된거지?'라고 묻는다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속엔 '우리가 정말 옳은 일을 하는걸까?'라는 물음이 있다.

1921년, IRA의 독립전쟁은 북부 벨파스트 지역을 제외한 부분자치권 허용이라는 성과를 얻어낸다. 영국과의 타협을 받아들이려는 온건파와 완전한 독립을 부르짖는 강경파로 아일랜드는 분열된다. 성과에 기뻐하는 테디와 돌이킬 수 없다는 초조함 속에서 완전한 이상을 찾으려는 동생 데이미언은, 서로의 현실 속에서 피할 수 없는 대립점에 선다. 두려움과 용서없음, 사랑과 가혹한 정의, 타협과 완전한 이상.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분열의 아픔을 다룬, 낯설지 않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