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때에 맞춰 보지 않아 아쉬울 만한 영화가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치 못했다. 만사 귀찮음을 나중으로 미뤄둬도 좋을 자유로 포장해왔고, 제 시간에 맞춰 산다는 게 점점 더 피곤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앞에선 더 이상 이런 게으름을 변명할 수가 없다. 도착해야 할 시각에 정확히 도착한 기차와도 같은 영화, 해가 바뀐 후에야 찾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작품이었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을 절묘하게 버무려내는 스타일리스트. 개인적으로 웨스 앤더슨의 작품에서는 대략 이런 스타일부터 떠올리게 된다. 색바랜 느낌의, 하지만 따뜻하면서도 수려한 색감, 심각한 완벽주의자라는 확신이 들 만큼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아름다운 화면구성, 그 속에서 어린 아이 같은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한떼거리의 배우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역시 여전히 즐거운 작품이지만, 어쩌면, 그가 생각보다 훨씬 더 만만치 않은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끔 한다. 마치 실뱅 쇼메의 성향이 팀 버튼의 감각과 만난 것 같달까. 안티-에이징의 시대에 웨스 앤더슨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소년과 장년을, 청년과 노년을 한 화면 안에 담아내려는 노력은 어디에서나 엿볼 수 있다. 그는 배우들을 아름답게 그리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사람들 사이의 만남을 아름답게 그려놓는다.

도살장처럼 변해버린 이 잔혹한 세상에도 한줄기 희망은 있지.
바로 그가 그 희망이었네.
무슨 말을 더 하겠나?

그는 놈들의 총에 맞았어.
그래서 내가 다 상속받았지.
(…)
솔직히 내 생각에 구스타브의 세상은 그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사라졌네.
그는 그저 자신의 환상 속에서 멋지게 산 거지.

There are still faint glimmers of civilization
left in this barbaric slaughterhouse that was once known as humanity.
He was one of them.
What more is there to say?


In the end they shot him.
So it all went to me.
(…)
To be frank, I think his world had vanished long before he ever entered it.
But, I will say, he certainly sustained the illusion with a marvelous grace.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만한 멋진 추모사인 것 같다. 2014년 그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로비 보이였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어제의 세계'이다. 낡고 남루해진 공간이 냉소로 감돌지 않도록, 그는 그저 자신의 환상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