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만 상속되는 게 아니다. 문화적 전통이나 교육, 직업, 취향 등도 상속되긴 마찬가지이다. 상속은 사회적 개인의 정체성 형성과 강화, 재강화에 기여하며, 또한 정치적 태도나 판단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엄밀히 말해 모든 물질적 유산은 동시에 문화적 유산이기도 하다.
-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제1부 취향에 대한 사회적 비판 - 제1장 문화귀족의 칭호와 혈통', 새물결, p.153

"구별짓기"에는 사회전방위를 향한 워낙 폭넓은 통찰이 담겨있어서 쉽사리 정리하기에는 어려우나 그럼에도 '개인적인 감상(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러한 표현 자체에 구별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비판한다)'을 끄적여보자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경멸은 단지 재산 상의 불평등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못 배워서, 무식해서, 저급하다는 이유로도 역시 경멸받는다. 이는 사회적으로 비슷한 지위 사이의 구별짓기로 이어지고, 이중의 차별구조를 형성한다. 즉 문화의 축적은 자본의 축적과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피지배계급은 변별적 생활양식의 특징을 보여주는 변별적 속성을 획득하기 위한 상징 투쟁에서, 특히 권유할 만한 속성들과 정통적 전유양식을 정의하기 위한 투쟁에서 오직 수동적 참조사항으로만, 즉 들러리로서만 개입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문화가 구성되면서 부정의 대상이 되는 자연은 '상스럽고', '대중적이며', '통속적이고', '상투적인' 것에 다름 아니다. 즉 '신분상승'을 꾀하려는 사람은 누구든 본성의 변화를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 '제2부 실천의 경제 - 제4장 장의 역학', p.453

피에르 부르디외는 '시간의 확보'를 보장해주는 모든 것에서 자본의 속성을 발견한다. 경제적 축적은 물질적 필요를 추구하는 시간을 아껴준다는 점에서 힘을 갖는다. 반면 문화적 축적은 사회적 담론을 이해하는 시간을 아껴준다는 데에서 힘을 발휘한다. 학력이라든지, 사회관계에 있어서도, 이미 확보된 시간은 소유자에게 유리한 격차를 가져다 준다. '가난한 이는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하다'라는 경제학의 무기력은 문화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술작품을 선택하는 안목에서부터 가구나 옷, 운동을 고르는 취향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사고는 자신이 속한 생활세계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으며, 부르디외는 이를 아비투스라고 부른다.

정치학은 오래전부터, 정치에 대해 질문을 받은 사람들의 상당한 부분이 거기에 답하기를 '기권했었다'는 사실과, 이러한 '무응답'이 성별, 연령, 교육수준, 직업, 거주지역, 정치성향에 따라서 의미 있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기록하면서도, 거기서부터 아무런 결론도 도출하지 못한 채, 이 가증스런 '기권행위'를 개탄하는 것에 만족해 왔다.
- '제3부 계급의 취향과 생활양식 - 제8장 문화와 정치', p.720

아비투스의 역설은 사회적 전통(그것이 경제이든, 문화이든, 정치이든)으로부터 소외되더라도 선선히 그 전통을 승인하고 받아들이는 경향을 낳는다는 데에 있다. 아비투스는 교육의 이름으로, 능력의 이름으로, 재능의 이름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수용하기를 요구한다. 오직 해당 전통의 소유자만이 '선택'의 권한을 가질 뿐이다. 통념과 권위는 아비투스를 보호하는 유용한 방책이 된다.

만약 테러리즘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판정하는 사람의 눈에는 그래야만 하는 존재방식이나 행동방식을 이루는 것이 결여된 남녀를, 취향이라는 이름 하에, 웃음거리, 불명예, 치욕, 침묵으로 몰아가는(여기에서야말로 각자의 친근한 세계에서 빌려온 여러 가지 예를 들어야만 할 것이다), 단호한 세상의 심판 속에 있다.
- '부록 1', p.919

피에르 부르디외가 제시하는 방법론이 인간을 분류하는 또 다른 구별짓기가 아닐까하는 의혹을 어쩔 수 없고(그 스스로도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하고 양해를 구한다), '그러니까 안타깝더라도 예술, 학문 등을 망라한 모든 문화적 전통 역시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에도 동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구별짓기"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왜 그토록 어렵고 힘겨운지를 좀 더 깊이 생각해보게끔 한다. 그의 말대로 개인들은 자신이 만든 물건 뿐만 아니라 문화와, 더 나아가 일상세계로부터도 소외당하고 있다. 약간 엉뚱할 지도 모르겠으나, 결국 문제는 시간에 대한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