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관점, 풍부한 서술. 굳이 비유하자면 "아테네의 변명"은 단비와도 같다. 절실하지만 정작 쉽사리 찾아보기는 힘든, 지성의 토양이 메마르지 않게끔 꼭 필요할 빗줄기이다.

물론 지나친 호들갑 같기는 하지만 꼭 과장만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하나 정도의 확신은 가지게 되었다. 자신이 속하는 장소나 시간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이란 없다는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과 펠레폰네소스 전쟁, 그리고 아테네의 흥망성쇠. 아마도 그 과정을 먼저 이해하지 않는다면,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서구사상의 가장 오래된 유산은 말 그대로 그저 고리타분한 고대의 경전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철학에는 아테네의 시민들이 가졌던 자신감과 좌절감이 오롯이 스며들어 있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더불어 정복자 페르시아에 저항하며 영예를 누렸다. 하지만 그리스의 지도자였던 그들은 얼마나 지나지 않아 압제자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패배자를 약탈하고 노예로 삼고 그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일 따위는 함선의 힘으로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었다. 아름다움, 즉 육체의 미는 곧 신의 선물로써 성공에 다가가는 중요한 무기 중의 하나였고, 마찬가지로 그럴듯한 말로 사람들을 속이고는 권력을 얻거나 치부하기 위해 변론술은 꼭 익혀두어야 할 기술이 되었다. 재산을 가진 남성만이 시민으로 인정되어 '그 시민'들은 승리의 영광을 얻기 위해 새로운 정복지를 목마르게 찾아해맸다. 민주정과 과두정의 대립은 그들의 욕망에 훌륭한 명분이 되어주었다.

베터니 휴즈는 고대 그리스가 이상화되어서는 안 될 뿐더러, 또 그럴 수도 없다고 확신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자신감이 절정에 달했을 때 활동하다 그 자신감이 절망으로 변했을 때 죽음을 맞이해야 했으며, 스승의 죽음 앞에서 플라톤은 자기 힘만 믿고 횡포를 부렸던 아테네의 오만함을 비판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너무 뒤늦게야) 이웃들과 함께 행복을 누리는 것만큼 달리 영광스러운 일은 찾을 수 없음을 설파했다.

캐묻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아테네의 변명"은 고작 몇 마디의 말로 간단히 답할 수 있는 일이란 세상에 없다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물론 삶은 바쁘다. 세세하고 복잡한 사정에 관심을 기울일만한 시간이 좀처럼 허용되지는 않는 것도 사실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바쁘다는 변명도, 무슨 일이든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라는 항변도, 플라톤의 "국가"를 비롯한 거의 2500년 전의 서술들에서 고스란히 확인하며 씁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매끈하게 정리된 '사실'들의 이면에는 언제나 간단한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투박한 '현재'들이 존재한다는 것 정도는 적어도 잊지 말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