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대륙의 역사는 왜 한결같이 1492년에서부터 출발하는 걸까. 미국의 역사는 또 왜 한결같이 메이플라워로부터 시작해서는 독립선언문으로 훌쩍 건너뛰어버리는 걸까. 심지어 어떤 저술의 경우엔 미대륙을 다루겠다더니 뜬금없이 대서양 저편의 로마제국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는 경우조차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1492년 이전에는 미대륙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국가라는 존재만이 역사에 대해 말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처럼.

백인들은 외눈박이처럼 한쪽만 보고 말했다. 그걸 즐기면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자기네가 한 건 아주 잘한 것만, 우리가 한 건 아주 못한 것만 입에 이야기했다.
- 로널드 라이트 지음, 안병국 옮김,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 '프롤로그 : 발견', 노란 늑대, 네르세족, 1877년경, 이론과 실천, p.34

… 오논다가족 전통 추장 데하카둔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뻔히 살고 있는 땅을 어찌 새삼스럽게 '발견'한단 말이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나는 당장 대서양을 건너가 영국을 '발견'하겠소."
- p.35

그래서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가 전하는 목소리는 생경하다. 기껏해야 원시문명의 환상으로나 접할 수 있었고, 현재에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고만 여겼던, 아즈텍과 마야, 잉카, 체로키, 이로쿼이 등의 어제와 오늘이 어렴풋하게나마 그 윤곽선을 드러내어 보인다. 그들은 1492년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었던 것도, 등장과 함께 곧바로 역사에서 영원히 추방당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1492년은 갑자기 난폭한 이방인들이 끊임없이 들이닥치기 시작한 때였고, 금을 빼앗기고, 토지를 빼앗기고, 노예가 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오랜 저항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이 한결같이 똘똘 뭉쳐 연대감을 발휘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가 전하는 목소리는 어쩐지 친숙하다. 힘이 곧 정의인 것 마냥 정복과 승리의 기록을 예찬하기에 바쁜 역사의 그늘에서 언제나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로널드 라이트가 이 저서에서 주목한 대로, 아메리카를 찾은 정복자들과 개척자들도 한 때는 자신의 고향에서 아무런 희망을 꿈꿀 수 없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기회를 꿈꾸었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신대륙이 이룩해낸 오늘은 놀라우리만큼 구대륙의 어제와 유사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