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떻게 말해야 할까. 한 마디로 '쩐다'. 그렇게 밖에는 말할 수 없겠다.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 따라붙는 경제학의 고전이라는 휘황찬란한 타이틀에 대해서도 베블런이라면 아마 '지랄하고 자빠졌네'라며 차디찬 냉소를 날릴 것 같다.

그의 독설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다. 고전이나 철자법 등도 그에게 걸리면 단지 학문으로 시간을 낭비했음을 증명하는 과시적 소비에 지나지 않는다. 계몽주의 시대가 끝나고 점잔을 빼던 학문에게서 더 이상은 찾아보기 어려워진 태도, "유한계급론"에서는 그런 솔직한 '빡침'을 엿볼 수 있다.

때때로 추정되듯이 부를 축적하려는 동기가 생존이나 육체적 안락에 대한 욕구였다면 한 사회 전체의 경제적 욕구들은, 어찌 생각해보면, 생산능력을 발전시킴으로써 충족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동기에 따른 투쟁은 본질적으로 차별적인 비교에 바탕을 둔 명성을 얻기 위한 경쟁이기 때문에 최종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은 결코 없다.
- 소스타인 베블런 지음, 김창균 옮김, "유한계급론", '2. 금력과시경쟁', 우물이 있는 집, p.62

워낙 독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어디까지를 풍자로 어디까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애매하기만 하다. (다윈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데에도 그렇다고 우겨대는) 사회진화론을 비틀어보이는 솜씨부터 그렇다. 산발적으로 흩어져서 나타나는 내용이라 간단히 요약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정리해보자면,

고대, 중세, 근대 등의 흔한 역사구분을 단호히 거부하는 그는, 대신 원시단계-야만생활단계-후기 야만생활단계-산업단계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원시시대의 인간은 제작본능을 지닌 평화로운 족속이었다. 그런데 야만의 약탈생활에 접어들면서 생산하는 대신 남의 것을 빼앗는 데에서 제작본능을 발휘하게 되고, 이로부터 파생된 명예라는 개념에서 과시적 소비를 향유하는 유한계급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야만문화가 성숙기에 접어들면 속임수와 기만이 약탈을 대신한다. 후기 야만생활문화에서는 직접적인 폭력보다는 교육과 규범체계가 중요해진다. 신분제적 질서는 아내나 종복들이 주인의 과시적 소비를 대신하는 대리여가 체계를 발달시키며, 가부장제를 특징으로 외견상의 평화를 지향하는 문화이다. 예절이라는 이름 하에 '보기에 불쾌한 것'들을 만들어내서는 위생이라는 개념으로 정당화시켰다고 분석하는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이 떠오르는 대목.

유한계급제도는 사회구조뿐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생활의 권위적인 기준이나 규준으로 인정된 어떤 성향이나 관점은 곧 그것을 공인한 사회구성원 전체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사고습관을 일정 부분 규정할 것이고 남자들의 적성 및 경향의 발달과정도 선택적으로 감독할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모든 개인들의 습관을 강압적이고 교육적으로 적응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적합한 개인과 혈통을 선택적으로 도태시킴으로써 이런 감독효과를 발휘한다.
- '9. 고대적 특성의 보존', p.251

산업시대에 이르면 부는 그 자체로 성공을 증명하는 징표로 변모한다. 비교와 경쟁은 극심해지고, 과시적 소비는 비난의 소지가 적은 비차별적 관심(이를 테면 자선과 같은)이나 은밀한 방식을 지향하게 된다. 이러한 취향들은 유한계급 체계를 선전하고 옹호하는 데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하지만 유한계급은 처음부터 약탈로부터 시작되었고, 산업시대에 있어서도 그 본질은 마찬가지이다. 유한계급은 부를 축적함으로써 약탈하고 그 일부를 자선함으로써 정당성을 획득하려 한다.

양심, 동정심, 정직함, 생명존중심이 없는 개인일수록 금력과시문화에서 상당히 광범위한 방면의 성공을 거두기가 더욱 쉽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262

이쯤 되면 사회진화론은 그냥 사회야만론이라 부르는 편이 더 적합할 듯 싶다. "유한계급론"에서 진정한 야만은 서구문명이 된다. 인류의 끊임없는 진보를 교리로 하는 낙관론자들에게는 뼈아픈 일격. 상류계급의 활동을 정치, 전쟁, 종교의식, 스포츠로 한정짓고 이를 도박심리(정령숭배)와 연관시킨다든지, 최상류층과 최하류층의 무뢰배들간의 유사성을 논한다든지, 베블런은 흔히 지켜야 할 가치로 포장되곤 하는 사회적 환상들을 거침없는 서술로 여지없이 깨뜨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