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피스. 이 단어처럼 타타르키비츠의 방대한 저술을 잘 설명해주는 단어도 없을 것 같다. 양도 물론이지만, 그냥 읽다 보면 마치 오랫동안 공들인 장인의 작품처럼 오랜 인내가 깃든 집약적인 연구성과라는 점을 저절로 느끼게 된다.

18세기 초엽까지의 (서)유럽 세계의 정전正傳들로부터 추출해낸 미에 대한 생각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속적인 반복에 무언가 조금씩 더해지거나 빠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려우나, 그렇더라도 예술에 관심이 많다면 소장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마치 백과사전과도 비슷한 구성 덕택에 참고할 부분만 콕 집어보아도 좋을 뿐더러, 또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읽는다고 해도 유려한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로마-서유럽으로 이어지는 정형화된 관점이라는 정도는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비록 저자가 학자나 사상가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목소리와 사회상도 어느 정도 포괄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미학만을 따로 떼어서 주제로 삼았다는 데에서 다소 심심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이야기하는가도 중요하겠으나 그보다는 '왜'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학문과는 어울리지 않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령 바로크의 경우 과연 도시의 성장과 따로 떼어서 논의할 수가 있을까. 궁정사회는 중앙집중화를 요구하고, 중앙집중화는 도시, 특히 수도의 위상과 무관하지 않다. 도시의 영향력이 확대된다면 당연히 시민계층의 성장도 함께 이루어지고, 이는 봉건제 하의 지방색과는 결별을 의미했으며, 동시에 재화의 힘이 혈통의 힘보다 우세해져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크는 이 와중에 도시의 궁정으로 몰려든 귀족들에 의해 주도된 문화현상이었다. 중앙권력 안에 편입되기 위해, 또 도시 안에서 자신들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바로크는 화려함을 추구하게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하지만 적어도 근대 이전의 예술은 기념물 혹은 기록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사회 혹은 개인의 자긍심이나 가치를 드러내고 보존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다. 실제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을 교육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부분도 사회의 가치를 어떻게 유지시켜나갈 수 있을까에 주로 촛점이 맞춰져 있다.

또 실질적인 내용보다는 쓸데없는 사설이 오히려 더 길어져버렸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타타르키비츠만의 특유한 관점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났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가져보지만, 최대한의 객관성을 유지한 덕에 미학을 접하는 데에 있어 출발점이 되는 저술을 남겼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