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통찰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그야말로 걸작.

지난 해 2012년 10월 1일 세상을 떠난 에릭 홉스봄의 저서들을 다시 꺼내보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미 읽었으면서도, 특유의 게으름 덕에 이제서야 정리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아차!'하며 다시금 책장에서 책을 꺼내든 이유는 바로 망각 때문이었다. 겨우 1년여 년만에 언제 그랬냐는 듯, 책장을 넘길 때마다 쏟아내었던 감탄과 그의 타계로 인한 애석함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기억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인간은 기록하려 하고,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단 한 사람이라도 항상 살아남아(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제14장 증거와 증언', 한길사, p.324)'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긴 사설은 여기까지만.

자유로운 토지시장(의 성립)은 그들도 언젠가는 자기 땅을 팔지 않으면 안 되리라는 것으로밖엔 생각되지 않았다. 또 농촌의 기업가계급이 창출되었다는 것은 가장 냉혹하고 빈틈없는 자들이 옛 주인 대신에, 또는 옛 주인에 곁들여 그들을 쥐어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을 뿐이었다. 통틀어 토지에 대한 자유주의 원리의 도입은 소리 없는 폭격과도 같았다. 그것은 농민들이 늘 그 안에서 익숙하게 살아온 사회구조를 박살내고, 그 자리에 부자 이외의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았다. 바로 자유라는 이름의 고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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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표현하면 산업혁명은 전례 없이 많은 남녀를 토지로부터 몰아내고 대를 물려 누려온 확실성을 박탈함으로써 아마도 가장 불행한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 에릭 홉스봄 지음, 정도영·차명수 옮김, "혁명의 시대", '제2부 결과 - 제8장 토지, 제16장 결론 : 1848년을 향하여', 한길사, p. 310, p.541

에릭 홉스봄의 방대한 저작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럼에도 '인류는 과연 진보하는가?', 그리고 설령 이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역사의 진보가 인간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굳이 요약하고 싶다. 인류는 프랑스혁명이 인간의 존엄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라고 '믿었고', 산업혁명과 그에 이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이 윤택해지는 과정이라고 '믿었다'. 자유라는 기치 안에서 이루어진 이중의 혁명, 에릭 홉스봄은 그 안에서 무자비한 폭력성, 이상과 실제 사이의 참혹할 정도의 괴리를 발견해낸다.

1830년대 말에 빌레르메는 고용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노동자는 항상 궁핍에 시달려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때에만 그는 자기 자식들에게 나쁜 본보기를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의 착한 행실을 보증해주는 것은 그의 가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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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목적도 없이 휘둘러지는 폭력 또한 그와 같은 대변동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러한 폭력은 가만히 당하고만 있던 자들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려고 하는 힘들에 대한 일종의 맹목적인 자기주장이었던 것이다.
- 같은 책, '제2부 결과 - 제10장 재능에 따른 출세, 제11장 노동빈민', p. 378-379, p. 388

역사를 살펴보다 가장 놀라게 되는 부분은 사실상 어떠한 특정한 사건(가령 전쟁 같은)보다는 오히려, 과거의 기록에서 마치 지금 현재를 기록해놓은 것만 같은 내용을 발견하게 될 때이다. 삶의 양상은 시시각각 변해왔고, 또 변해가겠지만, 결국 인간의 삶 자체는 고대에 있어서나, 중세 혹은 근대라고 부르는 시대에 있어서나, 현재에 있어서나 어쩌면 생각만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행복한 시간은 있다. 그러나 역사에서 행복한 시대는 없다'라는 아놀드 하우저의 말을 되씹게 된다. 권력이든(마키아벨리라면) 재산이든(마르크스라면) 교양이든(엘리아스라면), 이미 무언가를 가진 자와 이를 갖지 못한 자들 간의 다툼, 어쩌면 역사란 이러한 불행한 싸움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지난한 다툼에서 더러 자신이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가 모호해진다는 건 또 다른 비극이기도 하다.

'산의 정상까지 오른 자가 최고이다. 왜냐하면 인간세계라는 정글에서 살아 남기에 최적한 자이니까'라는 교의, 즉 사회적 다윈주의가 19세기 말 미국에서 국민적 신학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던 것도 결코 까닭없는 일이 아니었다.
- 에릭 홉스봄 지음, 정도영 옮김, "자본의 시대", '제2부 전개과정 - 제8장 승리자들', 한길사, p. 303

이중의 혁명은 그의 말대로 인간을 고독하게 만들어놓았다. 영주의 폭정에 '함께' 대항하는 농민은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어떠한 특정한 사회에 기대지 않더라도 충분히 살아갈 수가 있게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적인 결속과 유대는 해체되었고, 이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다른 모든 사람을 적대시하거나, 최소한 잠재적인 경쟁자로써 여겨야만 하게 되었다. 태생이나 신분이 아닌, 능력에 따른 성공이라는 개념은 물론 대단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러한 이상이 반드시 엄격하게 실행된다고 할 수도 없을 뿐더러, 더욱이 때에 따라서는 인간적 감성을 결여한 냉정함, 더욱 심하게는 무자비한 이기심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가정이야말로 부르주아 세계의 알맹이였다. 왜냐하면 가정에서는 그리고 가정에서만 그 사회의 문제성과 모순이 망각될 수 있었고, 혹은 인위적으로 배제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서 그리고 거기에서만 부르주아의 가족들, 더구나 소부르주아의 가족들은 조화롭고 상층계급적인 행복이라는 환상을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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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이란 단지 실용품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위와 출세의 상징이기도 했다. 물건은 인격의 표현이자 부르주아 생활의 이념과 현실로서, 또 인간을 '변혁'시키기까지 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의 가치를 지녔다. 이 모든 것들이 가정 안에 표현되고 집약되었다. 그리하여 가정 내에 물건들의 축적이 이루어졌다.
- 같은 책, '제3부 결과 - 제13장 부르주아의 세계', p. 442-443

(네번째는) 부르주아에 속했거나 또는 속한다고 주장하거나 열광적으로 속하고 싶어한 사람들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는 점으로, 한마디로 전체적으로 '중산층'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가정적인 생활양식이라는 개념은 그 구성원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들 가운데 하나였다.
- 에릭 홉스봄 지음, 김동택 옮김, "제국의 시대", '제7장 누가 누구인가? 부르주아의 불확실성', 한길사, p. 326

그리고 가정은 스스로의 비인간성을 변명하기 위한 훌륭한 도피처로 변모하게 되었다. 가족에 대한 환상은 분명히 가정이 해체되어 가는 현재에 이르서도 그리 쉽게 포기되지 않는 것 같다. 이는 아마도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또 다른 적절한 도피처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너무 냉소적인 것 같지만, 봉사나 기부 등과 같은 사회적 활동이 도피처로써의 가정을 대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불쌍한(대개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단어는 에릭 홉스봄의 견해처럼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만 한다. 스스로의 우월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시도일지도 모르니까.

(또한) 사춘기에서 결혼하기 전까지의 기간에 속해 있는 연령 집단이, 분리된 그리고 보다 독립적인 '청춘(youth)이라는 범주로서 등장하여, 예술과 문학에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청춘'이라는 말과 '근대성'이라는 말은 때로는 거의 서로 바꿔 쓸 수 있는 것이 되었다.
- 같은 곳, p. 325

'청춘'과 '힐링'이라는 단어에 열광했던 최근의 분위기를 찐득하게 느끼며, 감탄할 수 밖에 없었던 대목. 청춘이 근대의 발명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게 되었다. 성인식을 통해 아이에서 곧바로 어른이 되었던 전근대와는 달리, 근대 이후 결혼의 예비단계로써의 청춘을 거쳐서야 어른이 될 수 있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더욱 확장되어, (직업적인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일하지 않는 청춘을 거친 후에야 어른이 된다. 그리고 그 동안 사회적 약자로서 배우게 되는 것은 앞으로의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잔인해져야만 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삶의 가장 주요한 부분을 이루는 자신의 일에서 개인적 선의를 발휘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심리적 보상은 거의 언제나 '진짜 삶'의 바깥에 있다. 그리고 사실상 그마저도 얻기란 그리 쉽지 않다.

대중문화는 제국주의 시대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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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관점에서 본다면, 학교는 보다 본질적인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모든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훌륭한 백성과 시민이 될 수 있는지를 가르칠 수 있었다. 텔레비전이 승리하는 때가 오기 전까지는 교실에 비견될 만한 어떠한 세속적인 선전매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 같은 책, '제4장 민주주의 정치, 제6장 휘날리는 깃발 : 민족들과 민족주의', p. 229, 294-295

학교와 매스미디어는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있어 첨병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산학협력으로 인해 대학이 '똑똑한 바보'들을 양산내게 되었다는 비판은 등록금이 올라가면 갈수록 점점 더 부정하기 어려워지는 것만 같으며, 대중문화의 위험성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확산으로 승부를 걸어온 헐리우드가 이미 충분히 잘 보여주는 듯 하다.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인간은 대중문화를 통해 일반화된 공정을 거치게 된다. 지역마다, 마을마다, 저마다의 특색을 지니고 있던 작은 사회들은 그 흔적조차 희미해져버렸다. 대도시의 한복판이든 산골짜기이든 그 어디에서나, 문화적 중심지로부터의 확산을 피할 수가 없다. 현대사회에서 개성은 차별성이 아니라 동일성에 기인한다.



또 다시 쓰고보니, 너무 길게 되었다. 게다가 에릭 홉스봄의 저작 자체보다는 주관적인 견해에 너무 치중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이는 가급적 많은 인용을 넣으려 했던 욕심 뿐만 아니라, 이는 그의 저서가 현재에 비추어서도 생각해볼만한 지점들을 풍부하게 제시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예술작품에 대한 아서 단토의 견해처럼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이 세 권의 책이 비록 예술작품은 아니라 할지라도, 역사 또한 독자 스스로를 비추어볼 때에야 비로소 의미가 발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며 변명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