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국내의 신작다큐를 무려 2편이나 볼 수 있어 즐거운 날이었네요. 계속 해외의 작품들이 이어지다보니 자막이 없다는 게 영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죠. ㅋㅋ


색상구분 : 기개봉작 / 베스트 / 워스트 / 문제작


"예비선거 Primary"
"고스트 노이즈 Ghost Noise"
"청계천 메들리 Cheonggyecheon Medley: Dream of Iron"
"비싼 교육 Higher Education"
"달콤한 농담 Bittersweet Joke"
"마리아가 사는 방법 Maria’s Way"
"잠 못 드는 사람들 Goodnight Nobody"

"예비선거"는 첫 날의 "오후 한 시"처럼 오늘도 평가를 떠나 인류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기록으로 시작되었네요. 미디어 선거의 시작으로 귀에 딱지가 들을 정도로 들어왔던 존 F. 케네디의 경선장면을 가감없이 기록해낸 작품이었죠. 영화사에 있어서건, 정치사에 있어서건, 방송사에 있어서건, 어떤 의미로도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에 더 많은 설명은 필요없을 거 같아요.

"고스트 노이즈"는 이미 EIDF에서 선보인 작품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전에 리뷰를 하지 않았었군요. -_ㅠ 캐나다의 소수민족 이뉴이트족의 화가 슈비나이 아슈나에 대한 이야기였답니다. 외딴 마을의 소박한 일상에 인간과 대지, 자연과 신화를 더해놓은 듯한 작품이 깊은 인상에 남았죠. 불안정한 자신의 정체성에 향한 끊임없는 물음도 이 짧은 다큐 안에서 조심스레 찾아볼 수 있었네요.

"청계천 메들리"는 모처럼 만나는 국내의 신작다큐였는데요, 구로공단처럼 이제는 역사 속으로 점차 밀려나고 있는 청계천 금속가공공장들의 과거와 현재를 그린 작품이었네요. 마치 미디어아트처럼 오프닝부터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감독의 의지를 엿볼 수가 있었답니다. 다만 마치 읊조리듯 이어지는 네레이션을 좀처럼 따라잡기가 힘들었구요, 사적인 이야기에 중심을 둔 구성이라든지 혹은 불현듯 마음에 떠오른 심상을 이어붙이듯 두서없이 편집된 영상 역시도 좀처럼 따라잡기가 힘들었어요. 글쎄요, 딱히 이런 구분을 한다는 게 우습기는 하지만, 관객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에 앉아있어야 하는 영화관보다는 자유롭게 보다가 언제든지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미술관 쪽에 더욱 어울리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했답니다.

"비싼 교육"은 대학교육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호주의 이방인들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이 작품에서 이방인이란 외국인이나 이민자는 물론이고 농촌지역의 사람이라든지 가난한 사람까지 국적, 인종, 빈부의 차이 등을 모두 아우르는 다양한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었죠. 어렵사리 기회를 얻어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몇몇 인물의 육성을 통해 현재의 호주교육제도가 지닌 문제점을 성찰해보는 작품이었던 거 같아요. 다만 작품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들이 마치 교과서를 읽는 듯 정답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보여 그게 좀 아쉬운 점이었답니다. 음, 흔하디 흔한 자기개발서처럼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엔 몇몇 개인의 정제된 스토리만으로는 좀 부족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달콤한 농담"의 한 장면


"달콤한 농담"은 역시나 모처럼 만난 국내의 신작다큐였어요. 오늘의 베스트와 워스트를 모두 국내작품으로 꼽았다는 게 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네요. ㅋㅋ 어쨌든, "달콤한 농담"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이 나누는 달콤쌉싸름한 수다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생활이나 감정적으로 무척이나 힘겨울 것만 같은 그녀들의 수다는 예상 외의 웃음으로 가득했답니다. 엄마와 아이 사이를 오가는 카메라의 경쾌한 시선이나 매우 쿨하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그녀들의 어조가 산뜻한 작품이었어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에서 스쳐지나가듯 툭툭 던져지는 결혼에 대한 생각들도 현재의 시대에 결혼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했네요.

"마리아가 사는 방법"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는 순례길의 중간을 느긋하게 지켜내는 한 할머니에 대한 작품이었답니다. 순례객들에게 기념도장을 찍어주는 할머니는 대부분의 순례객들에게 그저 무시당하는 존재에 불과했어요. 어쩌다 멈춰선 순례객들도 마치 예전에 보았던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의 한 장면처럼 그저 사진만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죠. 그런 순례객들에게 지치기라도 한 듯 자는 척도 해보시지만, 정말로 발걸음을 멈춰서선 도장을 받고 쉬어가는 순례객들에겐 또 한없이 친절한 할머니의 모습에서 여러 생각들이 들었네요.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과 오직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는 바쁜 현대사회는 여행길에 있어서도 별반 다를 건 없었죠.

오늘의 마지막 작품 "잠 못 드는 사람들"은 모두가 불을 끄고 잠을 들어가는 시간과 딱 맞아떨어지는 작품이었네요. 아무래도 잠을 들 수 없는 사람들, 기약없는 불면증으로 아예 잠들기를 포기해버린 사람들이 주인공이었죠. 개인적으로도 불면증과의 기나긴 악연을 이어가고 있지만, 20년 동안 잠에 들 수 없었다는 한 할아버지 앞에선 그저 장난에 불과했어요. -_ㅠ 정적과 암흑으로 둘러쌓은 밤, 그 속에서 홀로 깨어 때론 지루하게, 때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또 때론 낮에는 할 수 없는 낯선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그들만의 시간은 역시나 오늘도 잠 못 이루며 이 포스팅을 쓰고 있는 저 자신을 조금쯤은 특별하게 바라보게 하네요. :)

이제 경쟁부분도 끝나고 바야흐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군요! 불과 며칠 전에 '이제 시작이군!' 했던게 벌써 옛날일인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