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느새 절반을 넘어섰네요~ 평일의 시작과 함께 전반적인 작품의 분위기가 조금은 더 묵직하고 심각해진 거 같아요.


색상구분 : 기개봉작 / 베스트 / 워스트 / 문제작


"달팽이의 별 Planet of Snail"
"비바 마리아! Viva Maria!"
"강의 포옹 The Embrace of the River"
"월드 클래스 키즈 World Class Kids"
"그린 웨이브 The Green Wave"
"The Castle"

우선 첫 번째 작품 "비바 마리아!"는 마치 헌사와도 같았죠. 폴란드에서 오페라만을 위해 일생을 바쳐온 마리아 폴틴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하네요. 한 때를 풍미했던 그녀에 대한 자료화면과 이제는 나이가 들어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열의를 다하는 모습에서 세대를 이어가는 열정이나 고집을 확인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강의 포옹"은 첫날의 "리틀 보이스"에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콜롬비아 작품이었네요. 유유히 흐르는 강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현재의 콜롬비아인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었죠. 여전히 살아남아있는 토착신화와 강 상류로부터 떠내려오는 내전의 희생자를 겹쳐내며 담담한 어조로 평온한 강의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는 사람들의 슬픔과 한을 그려내려 했답니다. 몇 해전 역시 EIDF를 통해 알게 되었던 희곡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과부들"이라는 작품처럼 남겨진 사람들, 특히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 혹은 형제자매인 여성들의 억제된 슬픔을 살펴볼 수 있기도 했네요. 다만 시선처리나 편집에서 너무 강의 신화에 의존하려했던 건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답니다.

"월드 클래스 키즈"도 역시 두번째 날의 "우리들의 학교"와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역시나 민족주의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나라 중 하나인 이스라엘의 학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정말 다양한 배경과 환경을 지닌 아이들이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여과없이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 특히 좋았던 작품이었어요. 제작년 "가자-스데롯 전쟁 전의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폭격으로부터 피난을 온 아이, 필리핀과 중국으로부터 온 아이, 그리고 백인과 유대인이 모두 함께 똑같은 수업을 받으며 하는 서로 다른 생각들이라든지, 혹은 뉴스나 부모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서로 다투고 상처를 입히면서도 또 한편으론 한 반의 친구로써 다정할 줄도 아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결국 경직성이란 서로 솔직하지 못한데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답니다.


"그린 웨이브"의 포스터


오늘의 베스트로 꼽은 "그린 웨이브"는 정말 아픈 작품이었어요. 마치 프라하의 봄이나 제작년의 "버마 VJ"처럼 변화에 대한 희망으로 불타올랐던 이란의 2009년 대선과 곧이어 이를 좌절시켰던 부정선거 및 탄압을 어렵사리 기록해낸 문제작이라고 해야할 것 같아요. 마치 땜질하듯 작품의 전반을 메꾸어낸 애니메이션에 대한 감독의 설명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답니다. 거리에 나와있는 사람이라면 가리지 않고 행해지는 무차별적인 구타와 폭력 앞에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간신히 남긴 기록 이외에 진실을 전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죠. 왕권이 물러간 자리를 대체했던 신권은 더할나위없이 가혹했고, 그 역사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만 같아요. 부마민주항쟁과 5.18광주민주항쟁 등의 아픈 기억을 다시금 생생히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기도 했네요.

오늘의 마지막 작품 ""은 음 뭐랄까, 다큐라기보다는 극사실주의적인 분위기가 더욱 물씬 풍기는 작품이었죠. 전세계인이 오가는 깔끔한 공항에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요. 마치 취조처럼 프라버이버시 따윈 안중에도 없는 입국심사는 이탈리아의 공항에서 9.11 이후 제정된 미국의 애국법이 실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네요. 작년의 "스페이스 투어리스트"에서도 느꼈었던 거지만, 항상 인류는 더 높이 더 먼 곳만을 바라보다가 정작 스스로가 살아가고 있는 땅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만 같아요. 높이 치든 고개를 조금만 내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하는 조그만 단상을 하게 되었답니다.

어느새 올해의 EIDF2011도 순식간에 절반을 넘어서버렸네요. 내일은 국내의 신작다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더욱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