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워낙 줄기차게 이어지는 상영표를 체험했더니만, 고작(?) 5편을 방영한 오늘은 뭔가 좀 여유롭다는 느낌마저 들었네요. 그래도 생각 외의 알찬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색상구분 : 기개봉작 / 베스트 / 워스트 / 문제작

"하녀와 주인 Maids and Bosses"
"흑백 가족사진 Family Portrait in Black and White"
"이템바:희망 iThemba"
"위키시크릿 WikiSecrets"
"경계도시2 The Border City 2"

오늘도 역시나 정리하고 보니, 경쾌한 작품을 선호하는 요즘의 취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네요. ㅠㅠ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는 결코 아닌 듯 싶어요. ㅎㅎ

첫 작품 "하녀와 주인"부터 꽤나 신선했는데요, 부유한 가정에 고용된 가사도우미들에 대한 이야기였죠. 하녀와 주인이라는 제목처럼, 가사도우미들과 주인들이 서로에 대해 터트리는 불만이 발랄한 대비감을 연출했답니다. 특히나 보모와 아이 간의 관계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못하면 못해서 문제, 잘하면 또 잘해서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죠. 바쁜 현대사회, 맞벌이에 대한 살짝의 질문을 던져놓았네요. 그리고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가벼움을 잃지 않는 어조는 단순히 가사도우미라는 직업 뿐만 아니라, 일을 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즉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을 보다 폭넓게 생각해보게 하는 장치도 되었던 거 같아요.

"흑백 가족사진"은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혼혈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는 우크라이나의 한 어머니에 대한 작품이었어요. 대충 어제 방영된 "우리들의 학교"와 비슷하지 않을까 예상했었지만, 사회를 관통하는 보다 폭넓은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었답니다.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득세하는 거리, 그리고 이런 스킨헤드의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이민자들, 옛 권위주의적 가치가 곧 삶이 되어버린 구세대들, 그리고 이 속에서 번번히 자신의 의견 따윈 묵살당하는 혼혈아이들 간의 얽히고 설킨 실타래. 페레스트로이카로부터 시작된 변화와 신자유주의의 위기 속에서 희망이라는 단어가 정말 낯설게 느껴졌죠. 영화 속 어머니를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린 사람은 저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 같네요.


"이템바 : 희망"의 포스터


"이템바:희망"은 정말 깊은 울림이 있는 작품이었어요. 버려진 사람들 중에서도 또 다시 버려진 사람들,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처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실업, 그리고 무책임한 정부 아래에서 고통받는 짐바브웨의 현실에서도, 신체적인 장애로 인해 다시 한 번 버림받은 장애우들에 대한 이야기였죠. 하지만 "이템바:희망"은 절대 우울하지 않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농담과 음악만 있으면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유쾌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이들의 노래를 듣고 함께 하면서 팬이 되어버렸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들은 정말 매력으로 가득했어요. 여자들만 보면 추근대던 마블러스의 뻔뻔함은 부럽기마저 하네요. 엔딩크리딧이 올라갈 때쯤, 신체적인 장애만 보고 저들을 불쌍하게 여겼던 나 자신이 오히려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위키시크릿"은 작년 2010년에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던 위키리크스의 폭로사건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이었네요. 각종 부패와 비리, 비밀을 폭로하는 위키리크스의 비밀을 다시금 폭로하는 다큐인지라 상당히 흥미가 있었답니다. 하지만 당시의 폭로사건에 연루된 사람들만을 부각시키며 그들이 죄인인가 아닌가에 너무 촛점이 맞춰져있어 아쉬움을 남겼네요. 사건의 내용과 반향에 대해서도 좀 더 소개를 하고 고민을 해보는 것도 좋았을텐데 말이죠. 폭로자는 정신이상자로, 모든 해커들은 단순한 범죄자로 몰아가는 듯한 인상마저 남겼으니까요. 국가적 행위의 정당성과 개인적 행위의 정당성을 보다 균형감있게 다루었다면 어땠을까 싶네요.


주말이면 끝나던 EIDF였는데, 올해는 주말이 끝나고 이제 절반을 넘어서고 있네요! 내일도 잔뜩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