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풍성하고, 힘겨운(?) 하루였던 거 같네요. 쉬지 않고 쏟아지는 7편의 작품을 부지런히 주워담느라 중간중간 정신을 놓기도 했었죠. ㅋㅋ


색상구분 : 작년 EIDF개봉작 / 베스트 / 워스트 / 문제작

"우리들의 학교 Our School"
"썬더 소울 Thunder Soul "
"소년 치어리더 Boy Cheerleaders"
"마라톤 보이 Marathon Boy"
"보이지 않는 현 Invisible Strings - The Talented Pusker Sisters"
"은밀한 즐거움 Guilty Pleasures"
"저항의 문화 Cultures of Resistance"

개인적인 베스트 워스트를 정리하고 보니, 발랄한 작품을 선호하는 요즘의 취향이 드러나는 결과가 되어버렸네요. 사실 워스트로 꼽은 작품들도 취향의 차이이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는 아니랍니다.

"우리들의 학교"는 집시차별로 악명높은 루마니아에 대한 이야기였네요. 마치 아파르트헤이트처럼 도시 근교에 고립되어 열악한 삶을 이어가는 집시들의 모습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보다도 아주 어릴 때부터 집시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와 루마니아인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구분되어있다는 사실은 경악에 가까웠지요. 음, 뭐랄까, 요즘 학교에서 들려오는 갖가지 따돌림에 대한 소식을 듣다보니, 모두가 함께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조성하기 위한 시도가 결국 수포로 끝나고 수세대에 걸쳐 내려온 집시와 루마니인들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는 걸로 끝맺는 결말이 더욱 씁쓸함을 남기네요.


"썬더 소울"의 포스터

"썬더 소울"은 제작년 EIDF에서 방영되었던 "엘 시스테마", "리듬 이즈 잇" 혹은 "개러스 합창단" 등을 어렵지 않게 연상시켰답니다. 세계적인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처럼 '음악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콘래드 존슨 선생님의 한 마디 한 마디도 인상적이었구요, 고등학생이었던 제자들이 어느덧 30년이 지나 다시금 마주앉아 펼쳐나가는 펑크재즈가 큰 울림을 주었답니다. 역시 이런 작품을 볼 때마다 생각하게 되는 건, 무엇이든 애정을 지닌 게 있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떤 것에 깊은 애정을 지니고 주변사람과도 그런 애정을 공유해나갈 수 있는 사람, 저 자신이 과연 그런 사람인지 반성해보게 되네요.

"소년 치어리더"는 앞선 "썬더 소울"과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었네요. 다만 치어리더를 꿈꾸는 조금 특이한(?) 소년들이 주인공이라는 게 다르달까요. 아무래도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치어리더이기에, 소년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변인물들의 반응을 보다 폭넓고 깊게 담아낸 작품이기도 했구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쯤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더러는 길을 잃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름 용기있게 웃음짓는 소년들의 미래가 궁금해졌답니다. 남들과 다르면 또 어떠겠어요, 사실 달라서 더 의미가 있는 거겠죠.

"마라톤 보이" 같은 경우는 3살 때 하프마라톤을 완주하고 4살 때 마라톤을 완주해낸 인도의, 소위 영재소년을 둘러싼 이해관계에 대한 작품이었어요. 감독이 말하듯 이 작품 안에서 진정으로 소년을 위하는 사람은 없죠. 아이의 꿈을 이루어주겠다는 양아버지의 말도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할 뿐더러, 그런 양아버지를 아동학대로 기소하는 정부 역시 아이의 행복보다는 양아버지와 대립각을 세우는 데에 더욱 몰두하는 듯 했죠. 아이를 통해 한몫 벌어보려는 친어머니는 물론이고, 정치인이나 언론의 태도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지였구요. 다만 아쉬운 건 음모론적인 향기가 났을 뿐더러, 좀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폭넓은 그림을 그리는 데에서 모자라다는 느낌이 있었네요. 조금만 타이트하게 갔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보이지 않는 현"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두 자매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가족이기에 가지는 애틋함과, 또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질투의 감정이 바이올린의 미묘한 선율 위에서 어우러졌죠. 하지만 자매 간의 사적인 이야기가 감독의 사적인 시선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약간의 아쉬움에 덧붙여, 또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엔 너무 심미적이라서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는 좁은 생각도 들었답니다. 차라리 극영화로 가는 쪽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역시나 좁은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은밀한 즐거움"의 한 장면

"은밀한 즐거움"은 개인적으로 오늘의 진정한 베스트가 아니었을까 해요. 로맨스소설을 쓰는 작가, 그리고 로맨스소설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도통 로맨스소설엔 관심이 없는 그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지요. 개인적으로 로맨스소설에 영 관심도 없고, 사실상 싫어하는 쪽에 가까운(!) 사람인지라, "은밀한 즐거움"은 정말 신선한 작품이었어요. 어떤 사람은 로맨스소설 속의 사랑이 현실이길 바라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건 그저 소설일 뿐 이라고 분명한 선을 긋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조금이라도 현실을 낭만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해가기도 하는 다양한 모습이 무척이나 흥미로웠죠. 로맨스소설을 바라보는 여러가지 시선을 폭넓고 재치있게 펼쳐내는 감독의 노력과 연출력이 단연 돋보였다고 말해야 될 것 같아요. 로맨스소설을 쓰는 작가가 정작 자기는 그저 혼자있고 싶다고 말했던 게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어요. ㅋㅋ

쉴새없이 이어지는 오늘을 마무리지었던 "저항의 문화"는 숨가쁜 하루를 마무리하는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죠. 콩고, 이란, 팔레스타인, 콜롬비아, 브라질, 버마 등의 전세계의 분쟁지역을 오가며 원인과 현재, 그리고 이에 대처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죠. 저마다의 방법이나 생각은 다르지만,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그건 불합리한 일이야'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 한 구석이 움찔거렸답니다. "예스맨 프로젝트"의 유쾌한 거짓말쟁이들을 다시 보게 되어 반갑기도 했구요, 제작년의 "버마 VJ"에서 봤던 장면을 다시 보게 된 것엔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조금 슬퍼지기도 했네요.


짧게 정리만 하려고 했는데, 워낙 작품이 많아 조금(?) 길어졌군요! 내일부턴 여유롭게 볼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