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노래"는 느리다. 마치 지리하게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지던 제1차세계대전의 참호전의 호흡을 그대로 재현하기라도 하려는 듯, 무척이나 느린 템포로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 호흡이 소설의 전반을 아우른다.

전쟁에 관한 작품에선 거의 빠지지 않는 열기에 들뜬 돌격장면 같은 건 없다. 휴가지에서 만난 낯선 여성과의 잊혀지지 않는 하룻밤의 사랑도 없다. 진한 전우애라든지, 전화 속에서 사무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역시 찾아볼 수가 없다. 절망감. 살아있기에 살아있고, 살아있어야 하기에 억지로 품어야 하는 증오. 이런 것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하루하루 끊임없는 늘어가는 전사자와 함께 마치 쥐처럼 참호 속에 틀어박힌 채 보내야 했던 나날들, 어쩌다 참호 밖으로 나와 적진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총탄이 무의미한 생명들을 앗아나간다. 어색하기만 한 휴가는 낯설어진 과거를 무기력하게 바라보게끔 하고, 예기치 않은 사랑조차도 그저 김빠진 맥주처럼 미지근한 약속만이 있을 뿐, 살아남아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전쟁의 마지막 순간, 그를 구해주었던 사람들 역시 자신을 지켜주리라 믿었던 전우들은 아니었다.

빗속에 앉아 있을 동안 그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전쟁의 결과는 그가 살건 죽건 간에 조금도 달라질 것이 없을 터였다. 그날 터너의 몸에서 머리가 날라가건, 아니면 다음 날 그나 쇼나 타이슨의 몸에서 머리가 날라가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친구들이 대신 죽게 해주세요. 그는 부끄럽게도 그렇게 기도했다. 그 친구들은 죽어도 좋지만 제발, 하느님, 나는 살려주세요.

전장에 대한 생생한 묘사, 느리고 찐득한 호흡, 그리고 지루한 공포. "새의 노래"는 마치 내일도 오늘처럼 견디기 힘든 아픔이 이어질 것을 아는 중환자 같은 작품이다. 자신의 아픔이 주변으로 전파되지만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지닌.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