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낯선 이들에 대한 6편의 희곡선.

아마도 이 작품들의 가장 큰 매력은 나 스스로가 지닌 무지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붉은 모스크바, 하얀 시베리아의 겨울, 저주받은 궁전 상트 페테르스부르크... 6명의 작가들은 러시아에서 살아간다는 것,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낯선 풍경을 열어놓는다.


알렉산드르 밤삘로프의 "오리사냥"에는 삶의 발작적인 권태가 담겨있다. 겉보기에 친구도, 직장도, 아내도, 심지어는 애인마저도 갖춘 주인공 질로프의 삶은 아무 것도 부족해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뒤틀려 있다. 어느 것에도 애정을 느끼지 못한 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끝없는 냉소만이 이어진다. 약속된 사냥여행을 앞두고 터져나오는 일상의 공허함은 점점 그를 광기로 몰아넣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무슨 일이냐고? 뭐가 불만이야? 뭐가 부족해서 그러는 거야? 젊고, 건장하고, 직장도, 아파트도 있고, 여자들한테도 인기 있고, 살면서 즐겨. 뭐가 더 필요해?"
"니네들이 꺼지는 거."
- "러시아 현대 희곡 1", '오리사냥', 알렉산드르 밤삘로프, 열린책들, p. 143

류드밀라 뻬뜨루셰프스까야의 "친자노"와 "스미르노바의 생일"에선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지는 술잔이 놓여있다. 포도주를 기울이는 "친자노"의 세 남자, 그리고 역시나 포도주를 기울이는 "스미르노바의 생일"의 세 여자.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내이자 애인이자 친구인 사람들. 실제의 술자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시시콜콜 이어지는 대화는 이렇다 할 주제나 목적도 없이 흘러가지만, 그저 스쳐지나가는 한 마디 한 마디에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피곤함이 슬쩍슬쩍 묻어나온다.

알렉산드르 갈린의 "새벽 하늘의 별들"은 늘상 전세계인의 축제라는 수식어가 붙어나오는 올림픽 기간 동안, 전세계인들 중의 하나로 인정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몸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여성들은 올림픽이 개최되는 도시에서 단지 도시미관을 방해하는 수치스러운 오점에 지나지 않았다. 도시의 거리에서 강제로 쫓겨나 고립된 그녀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엔 환상과 꿈, 그리고 고통이 깃들어있다.

"봐요, 언덕 위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지금 저기 앞으로 달려갔어…. 봐, 저기 아래, 저 사람들은 가도 되는데, 왜 우리는 안 된다는 거지? 남들보다 못해서? 난 갈 테야. 이 다음에 나를 재판하라고 해! 난 여자야, 내가 저 사람들에게 무슨 해를 줄 수 있겠어?"
- "러시아 현대 희곡 2", '새벽 하늘의 벽들', 알렉산드르 갈린, 열린책들, p. 99

사무엘 알료쉰의 "열여덟 번째 낙타"은 지적인 호기심으로 가득하지만 가난하기에 억척스러워져야만 하는 젊은 아가씨 바랴와 다양한 인물들의 입을 통해 사랑과 결혼에 대한 저마다의 지론들을 펼쳐놓는다. 현실을 마주하는 모든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는 환상과 오해, 그리고 어떤 고집. 사무엘 알료쉰 역시 어떤 것도 반드시 옳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사막같은 세상에서 예술이 아주 약간의 지혜가 되었으면 하는 고집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류드밀라 라주모프스까야의 "집으로"는 길을 잃은 영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살 곳도 없이 그저 길거리를 전전하는 아이들에게 삶의 어디에서도 구원은 없다. 살아가기 위해 구걸을 하고, 몸을 팔고, 범죄를 저지르고, 그리고 다시금 아무런 희망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다 절망적인 죽음에 이를 뿐이다. 요한계시록으로 시작되고 끝맺어지는 이 한 편의 희곡은 언제나 모든 것이 끝난 후 뒤늦게서야 찾아오는 천사에게 삶의 의미를 묻는다.

"가지 마! 나를 혼자 두고 가지 마! 가지 마! 난 모르겠어. 난 아무 것도 모르겠어…. 천사야, 만일 네가 천사라면, 정말 부탁할게, 나를 속이지 말아 줘! 네가 원하는 대로 난 거와 함께 갈게! 다만 나를 속이지만 마, 제발! 나를 불쌍히 여겨줘…. 진정으로 부탁할게…. 난 너무 지쳤어…. 집으로 가고 싶어! 난 너무나 집으로 가고 싶어, 천사야! 나를 집으로 데려다줘. 집으로! 자, 제발, 집으로! 집으로!"
- "러시아 현대 희곡 3", '집으로', 류드밀라 라주모프스까야, 열린책들, p. 108

올랴 무히나의 "따냐 따냐"는 여섯 편의 희곡 중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품일 것 같다. 무대는 음악이 흐르는 파티장이 되고, 대사들은 뮤지컬처럼 경쾌하고 가볍게 이어져간다.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 속 뒤얽힌 사랑 마냥 남녀 등장인물들은 얽히고 설킨 사랑의 감정들을 두서없이 풀어놓는다. 모든 것에 너무 진지할 필요는 없다는 것처럼, 진지하기만 한 사람들의 표정을 슬퍼하는 것처럼, 가벼운 어조는 사람들 저마다 스스로를 둘러싼 옷에다 피와 같은 포도주를 부어놓는다.

어쩌면 이 여섯 편의 작품으로 러시아의 현대 문학을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낯선 정서와 시선, 이야기. 하지만 삶을 고민한다는 건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인게 아닐까. 혹독한 겨울과 혹독한 삶. 알렉산드르 갈린의 "새벽 하늘의 별들"을 잃고 있는 순간,
공교롭게도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