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에 세겨진 기억들. 1930년대 중국 샹하이에는 부유층을 위한 아파트 코스모폴리탄이 세워졌다. 빈곤과 매춘, 범죄로 고통받는 거리의 풍경과 대조를 이루며, 우아한 가구로 들어찬 고급아파트 안에서는 파티를 열고 춤을 추는 여유로운 풍경이 이어진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만 같았던 코스모폴리탄의 삶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불길한 살인사건과 함께 찾아온 제2차세계대전. 학살되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실루엣은 자신의 불안을 감춘다.

역사로부터 한걸음 물러서 간신히 우아함을 지켜가던 아파트는, 전후 중국의 공산혁명에 의해 잔인한 복수를 받는다. 사람들은 산산히 흩어져 제 살길을 찾아 떠나간다. 어쩌다 남은 사람들은 새로운 권력 앞에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갖은 고초를 당한다. 코스모폴리탄은 더 이상은 부의 상징으로 남을 수 없었다. 빌딩 173으로 이름마저 바뀐 아파트는 점차 스스로가 외면하던 가난의 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정책의 실패와 기근, 폭력으로 변질되어가는 이념, 그리고 쌓여져가는 불신들. <빌딩 173>의 낡은 아파트엔 어찌해도 결국 피해갈 수 없었던 지난 75여년간의 역사가 아로새겨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