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앞을 볼 수가 없다.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손가락을 두드리며 대화를 전하는 아내와 늘 옆에 끼고 다니는 점자판이 세상과의 소통을 이어준다. 하지만 <달팽이의 별 (Planet of Snail, 2010)>은 장애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나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세상을 꿈꾸는 한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민감하고, 또한 사색 속에서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극단의 배우들과 잠깐 손길이 스친 것만으로도 특별함을 발견해내고, 곁에서 미소를 잃지 않는 아내를 천사라 부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글을 쓴다는 것이다.

감독이 말하듯 그는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다. 형광등을 갈아끼우는 일을 하나의 도전처럼 받아들이듯,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별것아닌 일상적인 일들에서 뜻밖의 의미를 발견해낸다. <달팽이의 별>에선 그와 친구가 되어버린 감독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장애우의 우울한 현실이라든지, 섣부른 희망으로 누군가를 설득하려 들 생각은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다. 그가 쓴 멋진 문장은 영화의 한 부분이 되어 잔잔한 마음의 파문이 되어간다. 그래서 아름답고 또 기대된다. 언젠간 서점에서 그의 세상이 맘껏 펼쳐진 소설을 읽을 수 있지 않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