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올리기 싫은 기억으로 떠나는 여행. 친구나 가족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여정을 챙기는 본인들도 자신의 여행이 의문스럽기만 하다. 자유를 잃어버렸던 101일간의 시간. 2003년 콜롬비아의 정글에서 ELN이라는 무장게릴라에게 납치를 당했던 8명의 여행객들은 6년이 지난 현재, 자신들을 감금했던 납치범들에게서 뜻밖의 초대를 받는다. 여정에 오르는 여행객들에겐 오직 하나의 질문만이 머릿 속을 맴돈다: 그들은 왜 우리를 납치해야했을까.

한걸음 한걸음마다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기억들. 마크 헨더슨(Mark Henderson) 감독은 6년 전 자신이 걸어가야만 했던 길을 그대로 다시 걸으며 지난 시간들을 펼쳐놓는다. 당황스럽기만 했던 납치의 순간, 공포로 이성을 잃어가던 사람들, 희망처럼 하루를 기록해가던 일기, 자유를 향한 맹목적인 탈출, 서서히 조여오던 절망감은 영화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씩 반추되어진다. 자신을 납치했던 게릴라들은 인권이 유린되는 현실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납치를 감행했노라고 답한다. 하지만 여행객들은 새로운 여정 안에서 자신들의 희생이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는 데에서 더욱 큰 상처를 받는다. 정의를 위한 불의,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없었던 납치범의 진실. <나의 납치범 (My Kidnapper, 2010)>는 어느 곳에서도 정의를 찾아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기록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