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의 위협이 지구를 공포로 몰아가던 냉전의 한 편에선, 전혀 엉뚱하지만 훨씬 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라디오와 TV의 개발이 가져온 새로운 전쟁. 고작 80km사이로 극와 극의 세계를 살아야했던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각각 서방국가와 공산국가의 대표주자가 되어 매일마다 치열한 전투를 치르게 된다.

TV프로그램으로 재조명하는 반세기간의 냉전. <디스코와 핵전쟁 (Disco and Atomic War, 2009)>에선 1968년 소련의 프라하 침공과 1979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그리고 1980년대의 공산주의와 위기와 잇따른 몰락의 과정이 <댈러스>와 <전격Z작전>, <스타워즈>, <엠마누엘> 등 각 시대를 대표하던 TV프로그램으로 묘사된다. 소련의 선전을 담은 에스토니아TV가 건립되자마자 서방세계에 의해 건립된 핀란드TV 간의 시청률 싸움, 정부의 통제를 피해 창의적인 방법으로 전파수신의 활로를 찾아가는 시민들. 야크 킬미(Jaak Kilmi) 감독은 스스로가 겪었던 어린 시절의 풍경을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실감나게 재현해낸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TV의 전쟁이 여전히 현재에도 진행 중일 뿐만 아니라 더욱 치열해졌다는 점이다. 제작년 EIDF를 통해 선보인 <접시안테나>에선 서방세계와 이슬람세계 간의 치열한 문화전쟁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