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쩡지에, Portrait H Series 2009 No.01, 캔버스에 유채, 180×180cm, 2009
출처 : 네오룩닷컴

일시 : 2009.09.11~2009.10.10
장소 : 디 갤러리(강남구 청담동)

중국의 현대회화는 그들이 보여주는 경제성장보다 훨씬 더 탄탄한 토대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공산주의의 바람이 낳은 문화혁명이라는 대대적인 박해 앞에서 회화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정치적 폭풍이 그나마 덜했던 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1세대 아방가르드 운동은 일상과 대중에 가깝게 다가간 서정적인 화풍으로 일반적인 소시민들의 삶을 화폭에 담아내었다.

중국의 현대회화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경제개방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세계로 알려지기 시작한다. 공산주의만을 찬양하는 학교를 다녔던 작가들은 마치 한쪽 손을 뒤집듯이 어이없게 포기되는 이념을 보며 옳고 그름에 대한 회의에 빠지기 시작한다. 자본주의와 함께 변해가는 시대의 초상을 그려내며 존재의 허무를 표출하는 위에민쥔(Yue minjun)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 작가군은 2세대 아방가르드라 불리우며 컨템포러리 아트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펑 쩡지에(Feng Zhengjie) 또한 2세대 아방가르드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으로 중국의 역량이란 단지 인구나 땅, 혹은 경제로만 말해질 수 없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펑 쩡지에의 작품을 보면 상당히 이질적이면서도 중국스럽다는 인상을 한 눈에 받게 된다. 청록색과 분홍톤이 강한 붉은색으로 구성된 수려한 색감부터 낯설다. 서양의 회화가 대개 3원색이나 인쇄에 기반한 4원색 등 인위적인 색채학을 기반으로 하는데에 반해, 펑 쩡지에는 꽃의 색감들을 기반으로 한다. 흔히 중국이라고 하면 거만할 정도로 자존심이 강하다라는 편견은 회화에서도 여지없이 들어맞는다. 2번에 걸친 아방가르드는 서구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하는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중국만이 보여줄 수 있는 중국인의 모습, 중국만의 색채, 중국만의 시선은 펑 쩡지에에게서도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다.

똑같은 표정으로 함빡 웃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그린 위에민쥔이나 인물의 검은 눈동자로 말하는 장샤오강(Zhang Xiaogang)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펑 쩡지에의 작품 또한 상당한 압박감이 있다. "Chinese Portrait" 연작은 차가운 피부톤에 너무나도 새빨간 입술, 각자 딴 곳을 바라보고 있는 깨알만한 양쪽 눈동자로 시대의 부정합 속에서 부유하는 중국인의 모습을 담아낸다. 펑 쩡지에의 회화작업은 감정이 없는 자조적인 건조함이 특색으로, 온정적이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관조에 가까운 시선을 보여준다. 짙은 청록색조의 해골과 꽃을 배경으로 생기넘치는 분홍빛 꽃들이 대비를 이루는 "Floating Floras"에서는 억제에 가까운 동양의 절제미를 느낄 수 있다.

이렇다 저렇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중국이지만, 고고한 역사 속에서 이어내려져온 그들의 자존심만큼은 부럽다. 일본 또한, 1차적으로 모방할지 모르겠지만 2차적으로는 항상 자기네의 방식대로 기어이 재해석을 해낸다는 점에서 부럽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생적인 작가들의 작업을 끈기있게 아껴주는 관객들이 존재한다는 게 정말 부러운 점이다. 그렇기에 중국에선 중국의 시선에서 담아낸 중국인이, 일본에는 일본의 시선에서 담아낸 일본인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국내의 컨템포러리 아트도 근래 몇 년간 자생적인 움직임들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는 분위기이다. 요즘은 다소 주춤한 듯도 보이지만, 이 움직임이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고 아껴주는 관객들을 만들어갈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