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장과 같은 도시는 어디일까. 독립선언문의 역사가 있는 정치의 중심지 워싱턴이나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문화예술의 도시 뉴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또한 미국의 공장이라고 불리우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또한 빠질 수 없는 후보일 것 같다. 하지만 미국문학과 사상의 본격적인 전개는 전혀 엉뚱한 북동쪽 끄트머리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그곳이 바로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고향 콩코드(Concord)이다.

19세기 미국의 문화적 지형은 남동부의 버지니아를 중심으로 한 지주중심적 문화권과 서부로 뻗어나가던 개척문화권, 그리고 콩코드를 포함한 뉴잉글랜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북동부의 청교도문화권 등 크게 3지역으로 나뉘어졌다. '너 자신을 믿어라(Trust Thyself)'라는 말로 압축되는 에머슨(Ralph Waldo Emerson)과 그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소로우는 1800년대 초중반을 주름잡으며 콩코드를 일약 문화의 중심으로 만든 장본인들이다. 초절주의(Transcendentalism) 혹은 직관주의로 알려진 이들의 사상은 개인의 양심과 상상력에 기반한 청교도적 낭만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미국의 르네상스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소로우를 떠올릴 때면 꽉 다문 입술의 고집불통의 할아버지가 연상되고는 한다. 평범한 가정에서 모범생으로 자라나 에머슨을 만나며 시인을 꿈꾸기 시작한 그는 하버드를 졸업한 후 교사로도 일했으나 멋지게도 2주만에 그만둬버리곤 자연과 가까워진다. <월든(Walden;or, Life in the Woods)>은 모든 문명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지내며 사색에 빠진 2년 2개월 2일 중의 첫 한 해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로, 월든호에서 홀로 살아가면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소로우는 처음 자기가 살아갈 집의 터를 선정하는 이야기에서부터 상당히 세세하게 생활을 묘사한다. <월든>은 호수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시적인 정경들도 일품이지만, 그보다는 도시의 시끄럽고 부대끼는 삶에 대한 대안에 더 가깝다는 인상이다. 그는 흔히 문명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삶을 직접 살아보이며, 그들의 변명과 이유를 차근차근 반박해나간다.

그렇기에 <월든>은 생계라는 측면을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수입내역과 지출내역까지 꼼꼼하게 기록해놓은 글을 보면 필자가 떠올린 연상이 영 근거가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소로우는 호젓한 호반에서 농사짓는 것만으로도 큰 부족함 없이 생계를 이어나간다. 어쩌면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가지고 싶은 것도 많은 현대인들에겐 설득력이 떨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소로우의 필치를 읽다보면 소비를 부추기는 욕심들이 아무런 반성없는 허영의 산물에 불과해보인다.


출처: 위키피디아


소로우는 '왜 그렇게 혼자 외롭게 사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오히려 '당신은 왜 그렇게 각박하고 낭비하며 사느냐'고 묻는다. 사람 사이에서 외롭다라는 말을 보다 과격하게 풀어내는 어조는 단호하기 그지없다. 그는 '꿈 속에서조차 혼자 있는 법이 없다'라고 비유하며 서로에 대한 존중마저 잃어가는 도시의 삶을 말한다. 홀로 외롭게 지내다보니 모처럼 찾아오는 손님이 반가웠으며 사소하게 찾아오는 이들이 줄더라는 고백은 끊임없는 스팸이나 세일즈맨 등의 불청객으로 괴로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월든>에서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았던 소로우가 납세를 거부하여 하루동안 철창에 갖힌 경험은 이후 그를 기억할만한 사상가로 만들어주었다.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민불복종'은 "부당하게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정부 아래에서는 정의로운 사람이 있어야 할 진정한 장소 또한 감옥이다(Under a government which imprisons any unjustly, the true place for a just man is also a prison.)"이라는 명언으로 이후 간디와 톨스토이, 마틴 루터 킹 등 걸출한 사상가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으며, 콩코드 또한 자부심넘치는 시민들이 살아가는 상징적인 장소로 남게 되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삶을 보면 우연이 주는 삶의 파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대학 다닐 때 우연히 에머슨을 만나 삶의 방향이 바뀌었으며, 우연히 길을 나갔다가 갖히게 된 감옥 덕분으로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인물이 되었다. 사람들은 학창시절에는 강요된 일과에 치이는 걸로도 모자라 방학 때도 계획표를 만들어야 하고, 또 사회에 나와서는 매일마다 출근도장을 찍으면서 스케쥴러를 들고 다니며, 어쩌다 휴식 차 여행을 가서도 어느 날 몇 시에는 꼭 어디에 있어야만 안심을 하곤 한다. 넘쳐나는 계획에서 성취의 기쁨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우연이 가져다줄 예기치못한 삶의 의미는 외면되어진다. <월든>을 보며 필자는 계획 또한 낭비의 하나는 아닌지 조심스레 의문을 가진다. 좀 더 자신을 믿고, 삶에서 계획 대신 상상력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