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계의 거장, 베르너 헤어조크가 떠나는 남극으로의 여행. <세상 끝과의 조우(Encounters at the End of the World)>는 비단 남극이 가지는 자연, 과학적 의미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연구까지 들어있는 인류학적 레포트이다. 세상에 끝에서 그는 지구의 환경문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치유를 말한다.

이 작품에서 언급하는 자연은 사색적이다. 남극의 신사, 펭귄에 대한 이야기는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연구가가 말하길, 더러 방향감각을 잃고 무리와 떨어져 혼자서 어디론가 향하는 펭귄이 있다고 한다. 이 펭귄은 다시 무리에 돌려놓아도 다시금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단다. 인간은 그저 지켜볼 수는 있지만 그 앞을 막아서면 안된다는 연구가의 짧막한 감상이 인상깊다.

화산연구가는 화산이 분출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을 알려준다. 그는 화산이 활동을 시작하면 반드시 분화구 쪽으로 시선을 향해야만 한다고 조언한다. 화산재가 이리저리로 날라다니기 때문에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어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옆으로 피하되 결코 뒤로 돌아서지 말 것, 그의 충고는 과학적인 견해이지만 은유적으로 느껴진다.

남극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지만, 남극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세상 끝과의 조우>는 각종 연구가들 뿐만 아니라 여행가나 인권운동가 등 남극으로 모여든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찾아간다. 원래는 철학교수였다는 운전기사, 노래하고 춤추며 사람들과 즐거움을 공유하는 예술가, 추운 극지방에서 꽃을 피우는 원예연구가 등, 남극의 하나의 도전이며 안식이고, 피난처이며 동시에 희망의 장소이다.

어쩌면 남극은 더 이상은 미지의 땅이 아닐지도 모른다. 남극이 경고하는 생태학적인 토픽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주요 이슈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베르너 헤어조크는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멀리 시선을 두며 남극을 새롭게 조망한다. 너무나도 거대한 자연이 주는 성스러움, 그리고 일상에서 벗어난 괴짜들이 자신들만의 일상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감동적인 다큐멘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