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고통스럽고 재미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한결같이, 뭔말인지 알 것도 같은데 전혀 모르고, 또 당췌 아무 것도 모르겠는데 뭔가 아는 것 같은, 정말 딱 그런 상태의 연속이었다. 젠장. 고양이도 아니고. -_-

모르면 용감하다고, 그냥 대충 '그래도 이 정도는 봐야지~'라며 많이들 추천하는 Friedburg를 교재로 선택한 것부터가 고생의 시작. 겉핥기로나마 집합론을 훑어보지 않았더라면 일찌감치 포기했을 듯. 거의 매일처럼 좀 더 쉬운 거부터 봐야하지 않을까, 이대로 계속 가도 괜찮은 걸까, 나의 이해력을 열심히도 한탄해야만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지금까지 고생한 게 너무나도 아까워서 도저히 끝장을 보지 않고서는 분이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순전한 오기로 버텼다. -_-

어쨌든 헛된 고생만은 아니었던 듯 싶다. Friedburg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방식의 수학교재였는데, 어쩌다 한 번씩 나오는 계산 문제가 반가울 만큼 지랄맞을 정도로 개념설명에 집요한 탓에 그동안 내가 수학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대충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졸라 계산만 반복했던 것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비로소 좀 이해하게 된 기분이랄까.

보면서도 보는지를 모르고, 들으면서도 듣는지를 모르는 것들이 많다는 느낌. 공간에 대한 개념, 선형성의 의미 등 그동안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관념들이 얼마나 협소한 직관에 불과했는지를 고민해볼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상상력을! 수학은 '관념의 모험'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면 할 수록 언어에 대해서도 더 많이 고민해보게 되고. 어처구니 없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교재가 빌어먹을 내 인생의 책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듯. -_- 이 뭐병..

암튼 이제 드디어 1차 목표, 해석학을 향해! 겨우 기초과정을 떼는 데에도 정말 빡세긴 하다. 선형대수도 그렇고, 지금까지 해온 게 얼마나 머릿 속에 남아있는지는 영~ 의심스럽지만, 늘 그래왔듯 계속 하다보면 조금씩 이해의 폭이 늘어가리라... 믿어야지 뭐. 별 수 있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