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떠해야 하는가.

로널드 드워킨에게 법은 소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어떠한 소설이든 독자에 의해 해석되는 과정을 필요로 하듯, 법도 역시 각 개인의 가치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법을 정당화하는 법 자체의 논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입법에 있어서나 사법에 있어서나, 언제나 위와 같은 질문의 도전에 마주해야 한다. 법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떠해야 하는가.

법률가는 항상 철학자이다. 왜냐하면 법철학은 무엇이 법인가에 관한 법률가의 설명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 로널드 드워킨 지음, 장영민 옮김, "법의 제국", 제10장 헌법, 아카넷, p.531

하지만 법은 어느 특정한 개인의 창작물일 수 없다는 점에서 소설과는 다른 윤리적 태도를 요구한다. 가령 어떠한 개인의 도덕관은 편파적이더라도 법보다 더 정의로울 수 있다. 반면 축구 등의 스포츠에선 규칙의 정확한 적용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로널드 드워킨은 이를 정의와 공정성의 차이를 통해 설명한다. 법은 정의가 아니다. 정의를 지향할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공정해야 하며, 절차적 정당성 역시 또 다른 문제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제들을 로널드 드워킨은 '통합성'의 관점으로 돌파하려 시도한다. 법은 확고불변한 진리도, 단순반복적인 규칙도 아닐 뿐더러, 어떠한 종류의 분명한 지향점을 갖고 있지도 않다. 법은 잠정적인 해석에 의해서만 정당화된다. 판사는 공동체의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법체계 안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법을 해석하고 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그렇지만 로널드 드워킨이 설명하는 통합성은 이상적인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상호존중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가정(혹은 최소한 그런 척 정도는)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의사결정이 과연 직업적 전문영역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회피에 다름아니다.

가령 직업작가만이 글을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가정해보자. 그의 대답이란: 글이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데, 근데, 결국엔 그걸 직업작가의 몫으로써 '우리'는 이미 존중(혹은 그런 척 정도는)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균열은 '박애'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만으로 그리 간단히 메워질 수 없다. 또한 과도한 권한과 책임을 개인의 몫으로 떠넘긴다는 반론도 피하기 어렵다.

정치란 어떤 원리를 그 공동체가 하나의 체계로 채택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그리고 정의, 공정성, 적정절차에 관하여 어떤 견해를 택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의 공연장이다.
- '제6장 통합성', p.302

화용론이나 의사소통이론에 대한 비판이라든지, 여러모로 좀 납득하기 어려운 구석들이 있기는 하지만, "법의 제국"은 개인과 공동체, 법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긴밀하게 엮어나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생각처럼 법은 결국 인간의 행위이기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는 없고, 가치중립을 주장할 수도, 임시방편에 따라 정당화될 수도 없다. "법의 제국"은 불완전하다. 그리고 끝나지 않는 고민의 세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