퓌스텔 드 쿨랑주에게 역사란 발전의 과정이다. 가족신앙에서부터 도시의 기원을 찾아나서는 그는, 고대세계를 가족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국가로, 점차 보편성이 확장되는 과정으로 본다.

신앙이 자리잡으면 인간 사회가 구성된다. 신앙이 변하면 사회는 일련의 혁명을 겪는다. 신앙이 사라지면 사회의 모습이 달라진다. 이것이 고대의 법칙이었다.
- 퓌스텔 드 쿨랑주 지음, 김응종 옮김, "고대도시", '제5장 도시체제의 소멸', 아카넷, p.540

처음에는 조상신이 있었다. 조상신은 가족의 종교였고 가족의 종교일 수밖에 없었다. 소유권은 조상신의 영역을 의미했으며, 따라서 개인은 집단과 동일시되었다. 하지만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배타적인 가족신앙으로는 내부와 외부의 다양한 갈등에 적절히 대처하기 어려워진다. 각자의 가족 안에서 왕으로서 권위를 행사했던 아버지는 시민이 되고, 이에 따라 종교적 감성은 물론, 그에 부속된 규범의 의미도 달라지게 된다.

로마는 각 도시의 자생적인 종교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지닌 종교적 감성이 한순간에 바뀔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로마인과 로마인이 아닌 자는 엄격히 구분되었고, 시민권은 부유층부터 아주 천천히 지속적인 요구 끝에야 주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철학과 기독교의 성장이 전통적 신앙에 기반한 사회질서를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인간이 생각해 내고 확립한 사회는 결코 불변적인 형태가 아니다. 사회는 그 자체에 질병과 죽음의 씨앗을 지니고 있다. 지나치게 큰 불평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에게는 어떠한 혜택도 주지 못하는 사회조직을 파괴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 '제4장 혁명', p.338

퓌스텔 드 쿨랑주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종교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동시에, 또한 이러한 시도를 통해 그가 자신의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암묵적으로 드러내어 보인다. 19세기는 악랄한 시대였다. 비록 그 이전이나 이후에 비해 더하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부의 편중이 가속화되고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적응을 강요했던 시대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1848년의 혁명은 실패했으며 이성에 대한 믿음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과거는 이미 틀린 것으로써 사라질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는 민주 국가의 시민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질어지는가를 알 수 있다. 사람의 전 존재가 거기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고, 개인적인 일이나 가족의 삶을 위해서는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었다. (…) 열정이 다소라도 식으면 그것은 죽거나 부패해 버린다.
- p.464

개인적으로는 그가 굳건히 믿어야 했던 역사의 진보라는 것이 지극히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나아진다'는 낙관론을 선뜻 받아들일 수도 없을 뿐더러, 또한 그의 해석이 단선적이라는 것도 지적해둘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어딘지 "고대도시"에서는 "중세의 가을"에서와 비슷한 정서를 느끼게 된다. 다루는 시기도 다르고, 주제도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판이하게 다르지만, 이들 '역사책'들은 과거를 서술하고 나름의 해석을 하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역사는 체념할 수 없는 어떤 것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