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역사, 사회, 정치, 문학, 수학, 과학, 그리고 …

괜한 트집 같지만, "21세기 자본"이라는 제목은 이 책에 어울리지 않는다. "21세기 자본"은 단지 현재 21세기 초반의 자본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토마 피케티의 기획은 보다 야심차다. 그는 경제학을 넘어, 학문 전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현재의 학문이 과연 얼마나 현실을 잘 설명하고 있는지, 아니 실제의 현실에 대해 관심이 있기나 한 것인지, "21세기 자본"은 현실감각을 상실한 학문에 대한 통렬한 일격과도 같다.

노동소득 불평등의 경우, 이 메커니즘에는 다양한 기술의 공급과 수요, 교육제도의 상태, 노동시장과 임금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규칙과 제도가 포함된다. 자본소득 불평등의 경우 가장 중요한 과정은 저축 및 투자 행위, 증여와 상속 관련 법률, 부동산과 금융시장의 작용이다. 경제학자들의 저술과 대중적인 토론에서 제시하는 소득불평등을 측정하는 통계 수치들은 흔히 노동 및 자본의 불평등과 관련된 상이한 요소들을 혼합시킨 지니계수처럼 종합적인 지수들이다. 이런 지수들은 불평등의 여러 차원과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 (…) 실제로 소득불평등을 측정하려 할 때 관찰되는 첫 번째 규칙적인 패턴은 자본과 관련된 불평등이 항상 노동과 관련된 불평등보다 크다는 것이다. 자본 소유와 자본소득의 분배는 항상 노동소득의 분배보다 더 집중되어 있다.
-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2부 자본/소득 비율의 동학, 7장 불평등과 집중: 기본적 지표", 글항아리, p.294

불충분한 데이터와 조각조각으로 나뉘어진 분과학문의 구조. 피케티는 학문이 오랫동안 이 두 가지의 만성질환에 시달려왔다고 진단을 내린다. 주어진 현실은 언제나 단순하지 않고 또 복합적이다. 하지만 학문은 현실이 드러내는 증상에는 무관심한 채, 각자의 영역을 구분지으며 오로지 정답만을 말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나의 분과학문으로써의 경제학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경제가 단순히 경제학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면, 게다가 데이터마저도 불완전하고 생략된 부분이 많다라고 한다면, 만약 그렇다면, 그 위에 세워진 논리에서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의료부문의 주된 목적이 건강한 노동자들을 다른 부문에 공급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교육부문의 주목적은 다른 분야의 직업을 얻을 수 있도록 학생들을 준비시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류사회에서 건강과 교육에는 본질적인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 건강한 생활을 즐기는 것은 지식과 문화를 습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명사회의 근본적인 목적 중 하나다. (…) 노동시장은 자연적이고 불변적인 메커니즘과 확고한 기술적 요인들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수학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특정한 규칙과 타협에 근거한 하나의 사회적 구조이며, 이러한 특징이 다른 시장들보다 훨씬 더 강하다.
- '3부 불평등의 구조, 9장 노동소득의 불평등', p.369-370

어찌보면 피케티의 문제제기는 너무 기초적이라서 허탈하기까지 하다. 더욱 유감스러운 건, 때로는 논리가 진실을 외면한다는 지적이 그리 낯선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피케티는 학문을 다시금 현실 속으로 밀어넣는 일이 현재에 주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학문의 스승은 이론이 아니라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제대로 기록하는 것이 또한 학문의 가장 큰 책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