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의 이름에서 눈치를 챘어야 했다. 첫 장면부터 심상치가 않다. "천주정"은 폭력에 대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폭력적인 작품이다. 묘하게 위화감이 드는 특유의 풍경 안에서, 지아장커는 매우 세련되고 또 정밀하게 폭력을 포착해낸다.

너무 쿨하게 내뱉어지는 절망감,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 죽이거나 혹은 죽거나, 단 둘만이 남아버린 선택지. '네 죄를 알렸다!'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임소요"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미숙함도, "스틸 라이프"에서의 말 못하는 감정도, 이제는 사라져버렸다. 마치 더 이상은 굳이 현미경을 들이대어야 할 필요도 없다는 듯, 무심히 스쳐가는 화면 하나하나가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솔직히 모처럼 정말 힘겨웠던 작품이었다. 인간에게 이제 무엇이 남아있냐고, 자, 어서 대답을 해보라고, 거칠게 몰아붙여지는 듯한, 그런 느낌. 외면할 수만 있다면 외면하고 싶지만 "천주정"의 풍경에서는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