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들었던 대로 19세기 초반에 감돌았던 서구 이성의 악명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문명과 야만, 교양있는 '시민'과 하층민을 마치 칼로 자르듯 구분하던 "오만과 편견"의 시대라는 점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멜서스의 유명한 예언은 그로부터 100년 후, 또 다시 100년 후, 시간에 의해 오류가 판명되었다. 하지만 "인구론"에는 어쩌면 더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는 덜 알려진 면모가 있다. 그건 바로 "국부론"과 마찬가지로 "인구론" 역시 당시의 정책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하층계급의 생활상태 개선을 참으로 희망하는 사람들이 진정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노동가격과 식량가격과의 상대적 비율을 높여 노동자로 하여금 보다 많은 생활필수품과 편의용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로 빈민의 결혼을 장려하여 노동자 수를 증가시키고, 또 시장에는 상품이 넘쳐흐르게 함으로써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려고 해왔다. 그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리라는 것은 별반 선견지명이 없이도 능히 예측할 수 있다.
- 멜서스 지음, 이서행 옮김, '제4편 인구원리로 나타나는 해악 제거 또는 완화에 대한 미래전망, 3. 빈민생활 개선 방안', p.467, 동서문화사

멜서스는 어찌보면 냉소적인 비아냥으로 느껴질 만큼 냉정한 주장을 펼친다. 먹고 살만 하면 누구든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부양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 가족을 갖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는 무책임한 인구증가에 다름 아니며, 빈곤의 악순환을 낳고 사회적 부담만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고로 결혼을 장려하는 짓 따위는 그만 두기로 하자. 자선이나 동정심으로 빈민의 생존을 유지시키는 것도 무의미하다. 해소되지 않는 빈곤은 언제까지나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과학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이론적 가정에 가깝고, 인간을 마치 인구를 재생산하는 (그리고 소용이 없다면 언제든지 폐기될 수 있는) 노동'자원' 정도로 치부했다는 올더스 헉슬리미셸 푸코 등의 비판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론"에는 여전히 그냥 지나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근대적 합리성이 19세기를 거치며 사실상 잊어버렸던, 1929년 대공황으로 잠시 일깨워졌다가 2008년 이후에야 겨우 다시금 이야기되기 시작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당연한 의문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적할 것은 자본과 기술에 의지하는 산업구조, 그리고 현재 확보 중인 특정 무역루트를 통해 얻는 이점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 따라서 어느 한 국가가 단순히 기술과 자본의 힘만으로 외국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언제까지나 시장을 장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다.
- '제3편 인구원리에 기인하는 해악 제거 위해 제안 또는 실시된 여러 제도 그 대책에 대하여, 9. 상업제도', p.380

중농주의와 중상주의가 여전히 팽팽하게 맞섰던 시기에, 멜서스는 산업을 선택의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농업도 중요하고, 상업도 중요하다. 어느 한 쪽을 집중하기 위해 산업구조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면, 만일의 사태라든지, 여타의 상황변화에 그만큼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분업 자체로 인해 야기되는 국가 간의 불균형이라든지, 국가 단위에서의 성장이 꼭 그 구성원들 전반의 생활수준 향상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자유무역이나 자본의 약속은 어디까지나 낙관적인 전망에 불과하다. "인구론"은 무역을 자동차만 생산하고는 그로 인한 이득으로 쌀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수요에서 남거나 부족한 물품을 교환하는 정도로 그 범위를 제한하자고 제안한다. 정책의 방향은 불확실한 이익에 대한 기대보다는 지속성을 보다 우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 전체의 시각에서 보자면 식량은 물론 그 외의 모든 상품들에 있어서 완전한 자유무역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이득이 된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러한 완전한 자유무역은 비록 자본의 보다 자유롭고 동등한 분배를 야기하여 유럽의 부와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일조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난한 나라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그 나라의 인구마저 감소시킬 것이 틀림없다.
- '제3편 인구원리에 기인하는 해악 제거 위해 제안 또는 실시된 여러 제도 그 대책에 대하여, 12. 곡물법 (2)', p.420

멜서스의 관심은 오직 하나, 사회의 안정이었다. 실제로 "인구론"은 프랑스대혁명 한창 진행되던 와중에 출간되었던 저서였으며, '과잉인구'의 '부도덕한 호소'에 동정심으로 '적선'하는 정도로 빈곤의 문제를 접근한다면 영국에서도 프랑스대혁명과 같은 사태를 피할 수 없으리라는 경고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일시적인 정책이나 선심으로 가난을 구제할 수는 없다. 그에게 있어 지속가능성은 사회적 안정과 뗄데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고통과 궁핍을 참는 인내력과 애국적 희생을 소리 높여 요구하는 것은 국민이 행복하지 못하며 그 국가 역시 평안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우울한 징후이다.
- '제1편 후진문명 지역에 나타난 인구 억제 요인, 5. 미크로네시아군도 인구 억제에 관하여', p.61